매일신문

[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만약 당신이 떠나버리시면

자크 브렐
자크 브렐

이 여름 날, 당신이 떠나버리시면/당신은 태양마저도 데려가 버리는 거예요/여름 하늘을 나르던 새들까지도 모두 말이에요/우리의 사랑이 새롭고 우리의 가슴이 뜨거웠을 때/우리들의 젊은 시절, 밤마저도 길었던 때는/밤새가 부르는 노래를 위해 달은 또 내내 그렇게 밝았었지요(중략). 사랑을 남겨 주세요/당신이 떠나버리시면, 떠나버리시면/떠나버리시면(중략)/당신이 되돌아오시면 그땐/다시 날 부른다 해도/나는 이미 천천히 죽어 가고 있을텐데요?/당신이 떠나버리시면, 떠나버리시면/떠나버리시면(중략)/울지는 않을 거예요/그렇지만 안녕이라는 그 말에서 모든 행복은 끝나는 거예요/당신이 떠나버리시면/떠나버리시면/ 떠나버리시면(Ne Me Quittes Pas)

대학 시절, 좁고 어두운 자취방에서 낡은 테이프레코드를 통해 흘러나오던 이 노래는 스무 살의 사랑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알게 해 주었다. 단정한 단발머리, 늘 화사한 웃음을 짓던 그녀가 이별을 통보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스스로에게 수십 번 소리쳤지만 그녀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던 늦은 밤, 불이 꺼질 때까지 그녀의 이층 자취방을 올려다보면서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에 속으로 한없이 울었다. 그랬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한여름 밤, 하늘을 가르는 섬광처럼 가슴에 내리꽂히는 그런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해서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통속적인 대중가요의 가사는 거짓이라고 머리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아주 오랜 시간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프랑스의 가수, 자크 브렐(Jacques Brel, 1929~1978)이 1959년에 작사, 작곡한 샹송 'Ne Me Quittes Pas'였다. 떠나가는 여인을 붙잡으려고 하는 애절한 내용은 깊은 내면의 고백과도 같았다. 암울했던 시대처럼 힘든 시간이었다. 그녀가 졸업 후 결혼하고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추억으로 남았다.

많은 가수들이 다투어 리메이크한 이 노래는 가끔 라디오에서, 카페에서 흘러나왔다. 특히 미국의 음유시인 로드맥퀸(Rod Mckuen, 1933~)이 영어 가사를 붙여 부른 'If You Go Away'는 원곡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이후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 1939~ 1999), 신디 로퍼(Cyndi Lauper, 1953~),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ara Streisand, 1942), 빠트리샤 카스(Patricia Kaas, 1966~), 니나 시몬(Nina Simone, 1933~2003) 등의 여가수들이 불렀지만 그 중에서는 홀로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니나 시몬의 곡이 가장 애절하게 들렸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소나기'에 나오는 애틋한 추억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최인호(崔仁浩, 1945)의 '별들의 고향' 같은 슬픔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윤후명(尹厚明, 1946~)의 '둔황의 사랑'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망부가와 같은 것일 수 도 있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랑이든 빛이 나기 마련이다. 비록 그것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덜 사랑했거나 덜 소중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현재의 사랑이 소중하다면 과거의 사랑도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이별은 독배처럼 쓰디 쓴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 이별의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지만 우리는 그 이별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랑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 박범신의 소설을 영화화 한 '은교'를 보았다. 칠순의 노시인, 사십 대 중년의 제자, 그리고 열여덟 여고생이라는 등장인물만으로 일각의 불편한 시선은 "늙음은 벌이 아니라 젊음의 연장선상이다"라는 작가의 일갈로 상쇄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 추억들 속에서 당장 죽을 것처럼 아파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것은 때로는 사람에 대한 아픔이었고 때로는 세상에 대한 슬픔이었다. 다시금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랑했던 순간들이 잊힐까 두렵다. 오늘 새로운 이별의 순간이 다시 왔을 때, 이제 다시 세상의 끝처럼 슬퍼하지 않게 될까 더 두려운 것이다.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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