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윙윙'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산천을 흔든다.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꼿꼿이 서 있던 잡풀들이 저항을 멈추고 맥없이 쓰러진다. 이따금 돌부리에 부딪히는 차가운 금속성의 파열음이 귀를 찢기도 한다.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들 산소에 벌초를 하고 있다. 예초기가 작업에 열중인 동안 다른 종원(宗員)들은 감독관처럼 멀찍이 떨어져 서서 지켜본다.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참이 지나고 예초기 소리가 멎는다. 이제 애벌 작업은 거지반 끝이 났는가 싶다. 그때부터, 무연히 기다리고 있던 종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낫질을 시작한다. 마치 이삭줍기를 하듯 둘레돌 틈새며 축대 언저리, 상석 주위 등 칼날이 지나가지 못한 곳을 세세하게 다듬는다. 낫질에 땀을 뻘뻘 흘리는 종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싸움터에서 전쟁을 치르는 병사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전쟁이 개시되면 가장 먼저 위력을 발휘하는 부대가 공군이다. 전투기들이 공중에서 한참 동안 집중 포화를 퍼부어 기선을 제압한다. 어지간히 작전이 마무리 되었다 싶으면 그때서야 비로소 육군이 나선다. 드문드문 숨어 있는 잔당들을 샅샅이 뒤져서 섬멸한 뒤 마침내 고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는 것은 육군의 몫이다.
상념의 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사람과 기계 사이의 관계에 생각이 미친다. 과학의 무한 발전이 이제 인간의 성(城)을 위협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기계의 성능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 같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고 해도 마지막엔 사람 손이 가야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만능기계라고 불리는 로봇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고 걱정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보면 그리 지나치게 염려할 일은 아닐 성싶다. 로봇은 사람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사람을 앞설 수는 없다. 로봇을 만든 존재는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계보다 사람이 윗길인 이유가 아닐까. 공군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된다 해도 군대의 중심은 결국 육군인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리라.
무릇 세상 모든 일에는 선후며 절차가 있는 법, 먼저 해야 할 것을 나중에 하거나 혹은 나중에 해야 할 것을 먼저 하면 능률도 오르지 않을 뿐더러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초래되고 만다. 고지를 점령하겠다며 성급하게 육군이 앞장서서 덤벼드는 만용을 부려서야 될 일인가. 벌초를 하다 새삼 사람살이의 이치 하나를 붙든다. 땀 흘린 보람으로 묘소가 깔끔하게 단장되고 거기다 가외의 소득까지 얻고 보니 기분이 흔흔해 온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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