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오빤 대구스타일

2012년 여름은 폭염과 올림픽 열기, 그리고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으로 기억될 것이다. 싸이가 초심으로 돌아가 만든 '강남 스타일'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인터넷을 타고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음악계와 연예계를 '말춤'으로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6천만 건을 넘어서며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강남 스타일'의 가사를 보면 강남 스타일의 오빠는 대충 이렇다.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히 미쳐 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Eh-Sexy Lady 오빤 강남 스타일…"과 같이 중독성 짙은 노랫말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반복적 리듬이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미국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에서 1위에 오르게 했다. 이를 보며 필자는 이제 우리의 문화가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80여 년 전 대구 미술계에도 싸이를 능가할 만한 '대구 스타일'의 열풍이 일어났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양화가 '이인성'이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국내 최고의 미술공모전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에서 입선한 후 '향토회'라는 대구의 미술그룹전에서 선배들을 제치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유학과 '제전' '문전' '일본 수채회화전'에서 잇달아 입상을 하며 일본 언론으로부터 '조선의 천재소년' '조선 화단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한국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향토색 화풍이 주류를 이루었다. 대구 시내를 그린 풍경화 작품과 경주의 산곡, 계산동 성당, 아리랑 고개, 사과나무 작품은 일본인들마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932년 조선미전에 출품한 '카이유'는 일본 왕실에서 작품을 직접 구입해 가기도 했다. 대구 남산병원 3층의 아틀리에와 다방 아르스는 이인성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미술인들과 미술애호가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였지만 그의 작품이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장래 희망을 이야기 할 땐 "저는 이 다음에 이인성과 같은 유명한 화가가 될 겁니다"라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곤 했다. 마치 요즘의 유행어처럼 이인성은 대구 스타일에 기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대에서 최고였던 적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는 싸이의 말처럼 이인성 역시 대구스타일로 세계에서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과 투혼을 불살랐다. "점잖아 보이지만 그림 그릴 땐 열정적인 사나이, 때가 되면 그림에 완전히 미쳐 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예술혼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Eh-Sexy Lady 오빤 대구 스타일…."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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