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거리의 인문학

거리의 인문학/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엮음/삼인 펴냄

노숙자는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는 그들에게 값싼 동정심이나 관심만 줄 뿐이다.

'거리의 대학',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는 게 아니라 인문학을 가르치는 곳이다. 얼 쇼리스가 만든 미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인 클레멘코스를 모델로 삼았다. '거리의 대학'을 이끌어온 임영인 신부는 오랫동안 빈곤계층을 만나 오면서 이들에게 철학이나 역사, 문학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숙인들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의식주 말고도 '자존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인문학을 공부했던 노숙인들의 글, 자원활동가들의 이야기, 실무진들의 이야기 등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각이 담겨 있다.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은 노숙인이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 그림은 어린 여조카에게 색연필을 빌려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차마 형제들에게 연락을 못 하다가 색연필 빌리는 것 때문에 연락해서 다시 만나게 됐다"고 말하며 기뻐한다. 또 다른 노숙인은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이 사람 얘기가 내 얘기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숙자들은 10년간 방황을 하던 끝에 어머니를 찾아가 울었던 이야기를 시로 쓰기도 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 책은 성프란시스대학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강생인 노숙인은 물론 교수가 서울역의 숱한 군상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는 과정이기도 하고 노숙인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자원활동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476쪽, 1만8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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