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노년층만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대통령 선거운동이 진행 중이다. 5년간 국가 운영의 책임자를 뽑는 것이니 시끄러워야 할지도 모른다. 18일 후 새 대통령이 탄생하면 국정 전반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우리 생활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에 무관심해도 정치는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며,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바람직한 정치제도로 여겨진다.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정치제도로 자리 잡으면서 내부적으로는 위협을 받고 있다.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투표는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대표성을 부여한다. 투표율이 낮으면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없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투표율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세계 각국이 투표율을 높이고 참정권 확대에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주, 벨기에, 싱가포르, 브라질 등은 의무 투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기권을 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공직을 제한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인터넷 투표를 실시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동네 슈퍼마켓에까지 투표함을 갖다 놓는 노력을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2000∼2009년에 치러진 우리나라의 평균 투표율은 56.9%로, 같은 기간 OECD 국가 평균의 71.4%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러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은 국민(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경우가 없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모든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의 32∼34%의 지지를 얻고 당선되었다.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조차 전체 유권자의 30.5%를 얻는 데 그쳤다. 한국의 대통령은 유권자의 3분의 1을 대표하는 소수파인 것이다. 대표성이 결핍된(representative deficit) 치명적 결함이다. 임기 중반 이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 안팎에 머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 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정파적 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높아지면 진보 세력에 유리해진다는 이유에서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에서도 공화당이 부정투표를 막는다는 이유로 투표율을 낮추기 위한 꼼수를 부렸다. 공화당이 우세한 주 의회가 평균 19일 이전부터 가능한 조기 투표 기간을 줄이거나, '유권자 신분증 법안'을 만들어 투표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다. 전체 유권자의 약 30, 40%가 이용하고 있는 조기 투표는 주로 학생과 선거 당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소수 인종, 저소득층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오바마가 승리했다.

우리나라에서 투표율이 낮은 주된 이유는 젊은 층의 참여가 낮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60세 이상은 68.6%, 20대 후반은 37.9%가 투표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노령화사회가 될수록 노년층의 한 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통계청 추산으로는 65세 이상의 비율이 현재의 11%에서 2030년 24.3%, 2050년 38%로 급증한다. 이 추세라면 2050년 이후에는 노년층의 투표가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정치가 노인에 의한, 노인만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은 노년층이 만든 정치와 사회적 룰 속에서 생활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디에도 노인만을 위한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나라의 중추로서 미래를 짊어지고 가는 것은 젊은 층이다. 그들의 의견도 국정에 균형 있게 반영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노년층의 투표를 제한할 수 없으며, 연령대별 가중치를 둘 수도 없다. 젊은 층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길밖에 없으며, 그들이 손쉽게 투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투표하세요"라는 독려보다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계명대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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