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귀여움의 파워 '귀요미' 신드롬…원초적 보호본능을 흔들어라

대구 아나피치방송아카데미의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최근 인터넷 셀프 동영상으로 유행하고 있는
대구 아나피치방송아카데미의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최근 인터넷 셀프 동영상으로 유행하고 있는 '귀요미 플레이어' 포즈를 연출했다. 아카데미 최윤정 원장은 "단정한 이미지만 강조하던 아나운서들이 이제는 귀여운 매력 등 끼와 개성도 갖춰야 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귀요미'를 아시나요? 귀엽고,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말투'행동'외모를 가진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신조어랍니다. 네티즌끼리 처음 사용했던 말이 이제는 대중문화와 일상생활 속으로 퍼지고 있다죠. 그러면서 보기에도 깜찍한 것은 물론 보호 본능마저 일으키는 구애와 처세의 기술도 낳고 있다네요. 귀여운 카리스마에 빠져든 우리 사회 속 '귀요미 현상'을 살펴봤쩌염! 뿌잉뿌잉~.

◆귀요미 말투로 친해져요~

'흐규흐규'('흑흑'과 눈물을 상징하는 'ㅠㅠ'를 결합한 표현) '우쭈쭈' '토닥토닥' '고고씽' '스릉흔드'('사랑한다'를 어금니를 꽉 깨물고 강하면서도 귀엽게 발음하는 것)….

귀요미 현상은 '외계어'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외계어란 '우리말이 아닌 온라인에서 생겨난 말로 알아듣기 어려워 외계에서 온 듯한 말'을 뜻한다. 외계어들 중 귀여운 대상을 지칭하거나 서로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귀여운' 외계어가 귀요미 현상과 관련 있다. 이른바 '귀요미 말투'다. 이후 인터넷은 물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귀요미 말투는 정서적인 소통을 위해 빼 놓을 수 없는 '감초'가 됐다.

사실 외계어는 젊은이들의 언어 파괴 현상으로 비춰지며 기성세대와의 의사소통 단절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귀요미 말투는 정반대다. 오히려 세대 간 의사소통에 윤활유가 되고 있는 것.

최근 스마트폰을 구입해 '카카오톡'에 접속하기 시작한 자영업자 조영식(55'경북 안동시) 씨. 그는 요즘 귀요미 말투에 푹 빠져있다. 귀요미 말투와 각종 이모티콘을 섞어 서울에 사는 대학생 딸과 수시로 '스마트폰 수다'(채팅)를 즐기고 있는 것. 종종 가족 모두를 채팅방에 초대해 온라인 가족회의도 연단다. 조 씨는 "귀요미 말투를 쓰면 평소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사랑한다는 표현은 쑥스럽지 않게, 화를 내는 표현도 거부감 들지 않게 할 수 있다"며 "온라인에서 만큼은 어렵고 과묵한 아버지가 아니다"고 웃었다.

귀요미 말투의 언어 파괴 우려에 대해서도 대학생 김혜림(23'여'대구 수성구 황금동) 씨는 "표준어가 아닌 것을 알고 일부러 쓰는 것이다. 표준어보다 더 '찐한' 정서적 표현을 할 수 있어서다. 수업 리포트나 이력서 등 중요한 문서에는 꼼꼼하게 따져 표준어를 쓴다"고 말했다.

◆귀요미 매력 발산하는 청춘들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이 더하기 이는 귀요미~"

최근 온라인을 휩쓴 셀프 동영상 트렌드가 있다.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동영상이다. 일(1)에서 육(6)까지 숫자에 맞춰 차례로 손동작을 펼쳐 보이며 깜찍한 표정과 목소리를 더해 이른바 '귀요미 매력'을 발산하는 내용이다. 이를 네티즌들은 물론 아이돌 그룹 멤버 등 유명 연예인들도 서로 따라해 셀프 동영상으로 올리며 '귀요미 플레이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렇듯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귀여운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며 매력을 발산하는 원조는 일명 '셀카(셀프카메라) 사진'이다. '직접 자신을 찍은 사진'이라는 뜻으로 디지컬 카메라와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휴대전화가 보급되며 유행한 것이다.

그런데 셀카 사진을 살펴보면 천편일률적인 '귀요미 표정'의 향연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온라인 한 커뮤니티에 '한국인의 흔한 사진 습관'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어 깜찍한 표정을 짓는 셀카 사진을 모아놓은 것이다. 네티즌들은 "나도 저 표정 자주 하는데" "누구나 쉽게 귀여워질 수 있는 유용한 표정이다"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요즘 젊은이들의 매력 발산은 '이성'의 마음을 끄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면서 귀요미 매력을 '실용적으로' 발산하는 연애 스킬 전수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고 있다. 일명 '쭉빵스킬'이 대표적이다. '좋아하거나 사귀고 있는 이성에게 통하는 귀여운 장난 팁(tip)'이다. 주로 여성이 남성에게 사용하는 구애 방법이란다. 인터넷에서 단어를 입력해 검색해 봤더니 관련 카페와 게시글이 수십 페이지나 떴다. 게시글 내용을 살펴보니 '좋아하는 이성에게 귀여워 보이는 방법' '귀여운 말투와 행동으로 고백하는 방법' 등은 물론 '귀여운 말투나 행동으로 이성을 애태우고 길들이는 방법', 그리고 '사용 후기'도 있었다.

◆어려 보이는 귀요미 외모가 대세

말투나 행동만으로는 귀요미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을까? 외모, 특히 얼굴을 어려 보이게 가꾸는,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려는 '동안'(童顔) 열풍이 수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중문화 속 여성 연예인들이 동안의 매력을 발산했다. 이전까지는 동안도 좋지만 원숙한 여성미의 가치를 더 높게 쳐 준 경향이 있다. 1996년 7월 모 신문 연예면의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24살이던 탤런트 장서희 씨는 "어려 보이는 얼굴 때문에 여자 티가 나지 않아 원숙한 여성미를 풍기는 배역을 맡지 못해 그동안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직장인 장모(32'여) 씨는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지금이라면 귀여운 동안 미모의 비결을 묻는 인터뷰로 기사 내용이 가득 채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명 '동안 미용' 시장은 상당한 규모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안을 위해 먼저 '노화'를 저지해야 한다. 올해 국내 노화방지 화장품 시장은 1조6천억원 규모다. 노화를 열노화, 광노화 등으로 세분화해 예방하는 기능성 제품도 개발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미백'도 중요하다. 올해 국내 미백 화장품 시장은 9천억원 규모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매년 5%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주름'도 없애야 한다. 올해 3천억원 규모인 주름 개선 화장품 시장도 꾸준히 성장 중이지만 더욱 효과가 높은 주름개선제('보톡스' 등 보톨리늄 독소제) 시장은 700억원 규모로 매년 18%씩 급성장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동안 관련 시장은 '미용 성형' 시장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화장품 시장과 달리 시술에 초점을 맞춘 데다 비싼 비용 때문에 젊은이들보다는 급격히 노화가 진행되는 30, 40대 이후의 중장년층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우리나라 성형수술 시장 규모는 5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 7위 규모다.

◆처세에서 생존까지, 귀요미의 사회학

인간관계 속에서 일종의 '처세술'로 개발된 기술이 있다. 바로 '애교'다. 사전적 뜻은 '남에게 귀엽게 보이는 태도'다. 그런데 막연히 귀엽게만 보여서는 안 된단다. 각종 처세술 관련 책을 살펴보면 신입사원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애교'가 필수사항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 없는' 애교는 금물이란다. 가령 실수를 했을 때 애교는 상황을 무마하는 것이 아닌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태도이고, 대화를 할 때 상냥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은 겉만 귀여운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이해한다는 반응의 표현이라는 것.

그러나 뭐든 과하면 독이다. 지역 모 기업의 과장 이모(35) 씨는 "신입사원들이 회식 자리에서나 할 법한 지나친 애교를 근무 중에 '발산'하면 중간관리자 입장에서 상사들 보기에 난처할 때가 적잖다"며 "직장인 애교의 핵심은 귀여움 이전에 눈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얼굴의 애교점처럼 상황에 맞게 '톡' 찍고 그치는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부 박미림(33'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세 살 된 아들의 행동을 보고 최근 깜짝 놀랐다. 엄마, 아빠에게만 귀여운 표정과 행동을 보이고, 낯선 사람은 무서워하던 아들이 이제는 친척이나 이웃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재롱을 떨더라는 것. 대신 군것질거리 등을 꼭 얻어내더란다. 절대 따로 가르쳐 준 것이 아니란다.

이를 진화심리학계에서는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분석한다. 진화심리학자 미국 하버드대 디어드리 배릿 교수는 "동물의 새끼들이 모두 귀여운 외모를 가진 이유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자연환경에서 부모와 집단으로부터 사랑의 욕구를 불러 일으켜 양육 의무를 다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작은 몸집에 상대적으로 큰 머리와 통통한 팔'다리 등이 귀여움을 유발하는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아기의 귀여움을 어른 시기까지 연장해 생존을 보호받으려는 심리가 바로 애교와 같은 처세술로 나타난단다. 디어드리 배릿 교수는 만화'장난감 로봇 등에 탐닉하는 '키덜트'(kid+adult) 남성들이나 '베이비 로션'을 선호하는 여성들을 예로 들며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수많은 책임과 의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귀여움의 파워'를 지닌 아기에게만 부여되는 무책임의 특권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동경한다"고 분석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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