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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빛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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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환

아홉 살 무렵,

나는 호박죽을 무지 좋아했었지

울콩 넣고 밀가루 반죽 비벼 넣은 누렁호박죽

어떤 가을날엔 다섯 그릇이나 먹고 보기 좋게 뻗었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일어설 수도 없었지

먹어서 죽는다는 말,

어린 나는 그때 이미 터득했었지

어른들은 뒹구는 나를 짜구났다 놀려댔었지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한 사람 가량의 빛이 내 가슴을 쑥, 빠져나가던 날

나는 인생이 너무 가벼워져서

갑자기 인생이 너무 무거워져서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일어설 수도 없었지

밥데기 한 술, 물 한 모금 안 넘기고도

짜구나서 뒹구는, 참 놀라운 비법을

나는 마침내 터득할 수 있었지

세상살이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계절이 되어

시를 생각하는 일은 삶의 여러 장면을 겹쳐 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옛 경험으로 지금의 경험을 적절하게 해석하는 눈을 얻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몸속에 굽이굽이 간직되어 있는 지혜를 펼쳐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 가량의 빛이 내 가슴을 쑥" 빠져나가는 아픔, 가장 존경하는 분이 돌아가셨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이런 경험이 왜 하필, 호박죽 먹고 배탈 난 옛 경험과 겹쳐졌을까요. 제 몸인데도 어찌할 수 없는 그 느낌의 무게가 이 경험에 무겁게 내려앉았기 때문이겠지요.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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