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비운의 왕세자

영친왕 이은(李垠)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다. 고종 황제의 아들로 순종의 이복동생이었던 그는 1907년 11세의 나이로 덕수궁에서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나 나라가 망하면서 '제국 없는 황태자'의 신세가 되었다.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1910년 국권이 상실되고 순종이 폐위되자 왕세제로 격하되었다. 그 후 일본 황실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왕족의 맏딸인 마사코(方子)와 정략 결혼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형식상으로 왕위 계승자가 되었으나 일본에 머문 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56년 만인 1963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부인 이방자(마사코) 여사와 함께 귀국했으나 병마에 시달리다가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는 정치적인 노선이 다른 부황(父皇)과의 대립과 모후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성장했다. 그는 68년 동안이나 황제의 자리에 있었던 완고한 아버지의 정치 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정략결혼 생활에도 실패한 이후 연인과 별장에서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 찰스 왕세자가 영국 역대 최장 왕위 계승 대기 기록을 깼다. 세 살 때 왕세자가 된 후 환갑이 넘도록 60년째 대기하고 있으니 '왕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뜰 것 같다'는 그의 푸념이 공염불만은 아닌 듯하다.

결혼 생활도 파란의 연속이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비극적인 죽음과 이혼녀 커밀라 파커 볼스와의 불륜 그리고 재혼의 과정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왕이 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찰스는 자칫 왕위를 아들 윌리엄 왕자에게 바로 넘겨야 하는 '비운의 왕세자'가 될지도 모를 처지이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부왕인 영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들 정조가 보위를 이었던 사도세자의 가혹한 운명에야 비할 수 있을까만….

조선의 멸망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왕족은 몰락했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 왕조가 등장해 3대째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남한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가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박근혜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실패하면 정치 여정을 마감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부모를 모두 비명에 보낸 박 후보가 오는 19일 대선에서 진다면 그 또한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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