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땅굴로 기름 훔치는데…땅위서 탐지봉 점검

송유관 유출 감지시스템 허점투성이

지하 송유관을 뚫은 일당은 압력 계기판과 유류관 조절 밸브를 통해 기름을 빼내왔다.
경북경찰청은 4일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송유관 인근의 주유소를 사들인 뒤 송유관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쳐 판매한 일당 13명을 붙잡았다. 이들이 3개월에 걸쳐 지하 1m 위치에 50m 길이로 뚫은 굴의 모습이다. 경북경찰청 제공
지하 송유관을 뚫은 일당은 압력 계기판과 유류관 조절 밸브를 통해 기름을 빼내왔다.
경북경찰청은 4일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송유관 인근의 주유소를 사들인 뒤 송유관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쳐 판매한 일당 13명을 붙잡았다. 이들이 3개월에 걸쳐 지하 1m 위치에 50m 길이로 뚫은 굴의 모습이다. 경북경찰청 제공

지하 송유관을 뚫어 3개월 동안 70억원가량의 기름을 훔친 사건(본지 4일자 8면 보도)이 발생한 가운데 송유관 관리 당국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기름 절도를 막을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이 송유관을 관리하는 대한송유관공사는 유압 변화를 통해 기름이 유출되는지를 감지하는 시스템을 갖췄지만, 어디서 얼마나 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기름 절도 등을 감시하기 위한 순찰팀을 꾸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지능'조직화되는 기름 절도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유출 감지 시스템의 허점=대한송유관공사는 현재 국내 총 송유관 1천311㎞ 중 SK에너지가 운영하는 103㎞를 제외한 1천104㎞를 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기름이 유출된 송유관은 울산시 온산읍의 정유공장에서 생산된 휘발유와 경유 등을 경기도 과천까지 보내는 관로로 길이는 454㎞에 달한다. 전국에 걸쳐 가압소가 12곳 있어서 장거리 수송으로 낮아진 유압을 보충한다.

이번에 절도사건이 발생한 김천시 아포읍은 대구 가압소와 추풍령 가압소 구간 사이에 있다. 대구 가압소에서 유압을 1㎡당 약 50㎏ 정도로 높여 추풍령 가압소까지 이동해 다시 유압을 보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기름 절도를 막기 위해 대한송유관공사는 유압 차이를 이용한 기름 유출 감지 시스템(LDS'Leak Detection System)을 2008년 자체 개발했다. 기름이 유출되면 압력이 떨어지는 것을 이용해 기름 절도를 파악해 내는 것이다. 대한송유관공사에 따르면 이전에 사용했던 미국 SSI사 시스템의 경우 시간당 10만ℓ 이상이 새야 감지가 가능했지만, LDS는 시간당 8천ℓ 이상의 누유(漏油)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유출되는 기름의 양이 이보다 적을 경우 감지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김천의 기름 절도 사건에서 경찰이 확인한 절도 기름양은 8월 27일부터 11월 25일까지 91일 동안 약 400만ℓ다. 이를 환산하면 하루에 약 4만4천ℓ이고 1시간에 1천800ℓ가량이다. LDS가 감지 가능한 시간당 8천ℓ 유출량보다 훨씬 적은 양이어서 유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

LDS를 통해서는 도둑맞은 기름 총량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김천 사건에서 밝혀진 절도 기름양은 주유차량이 배달을 위해 고속도로 나들목을 빠져나간 횟수를 근거로 경찰이 계산한 수치다.

한국송유관공사는 2009년 22건, 2010년 12건, 지난해 15건, 올해 김천 사건을 포함해 15건 등으로 기름 절도 건수는 파악하고 있지만, 절도 당한 기름양에 대해선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한송유관공사는 김천을 지나는 10여㎞ 구간에서 기름이 유출되는 지점이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주유소를 수상히 여긴 시민의 제보가 없었다면 밝혀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효성 없는 순찰=대한송유관공사는 2007년 관로 순찰을 전담하는 '파이프라인 패트롤'(PLP) 팀을 만들었다. 전국의 취약구간 200여 곳에 순찰팀원 40여 명을 365일 투입한다. 순찰은 절도 사건이 주로 발생하는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 사이에 이루어진다. 이들은 탐지봉으로 송유관이 묻힌 부위에 대면서 송유관의 소재와 다른 금속이 연결됐는지 살핀다.

하지만 땅 속 2m에 묻힌 송유관을 지하에서 뚫으면 범행현장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번 사건 경우 절도단 5명이 3개월 동안 순찰시간과 비슷한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 사이에 갱도를 팠지만, 순찰팀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전체 송유관 1천311㎞에 대해 1㎞당 한 명씩만 배치해도 1천 명이 넘는 순찰인원이 필요해 실효성 있는 감시가 어려운 형편이다.

송유관 기름 절도범죄가 날로 지능'조직화되면서 절도범들은 단속의 눈을 피하고 있다.

이번 절도단은 자금을 마련하는 사람과 땅굴 파는 팀, 기름의 종류를 감별해 분류하는 기술자, 송유관에 호스를 연결하는 배관 기술자, 판매'운반 책임자, 훔친 기름을 저장하는 사람 등으로 조직화돼 있었다. 또 땅굴을 팔 때 지하에서 방향을 잡아줄 레이저 수평계와 산소 공급을 위한 공기정화기, 발전기와 용접기, 전기드릴, 고압호스, 누수탐지기, 유압계 등 장비도 두루 갖췄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사법권이 없는 상태에서 의심되는 시설물이나 건물을 발견해도 제대로 된 수색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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