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밤나무의 소망

아직 전문대학은 남았지만, 27일로 4년제 대학교 정시 원서 접수가 마감됐다. 입학사정관제부터 치면 8월부터 시작한 2013학년도 대학 입시가 마무리돼 가는 것이다. 물론 수험생과 학부모는 합격자와 추가 합격자 발표가 남아 내년 신학기 전까지 마음을 졸여야 한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정시에서 학교와 학과 선택이 어려웠다. 전체 수험생은 지난해보다 줄었지만, 수시전형이 많이 늘어났고, 입시 제도가 내년에 바뀐다는 부담으로 다소 하향 지원 분위기였다. 또 올해 수능에서는 외국어가 어렵게 나와 통상 변별력의 중심 역할을 한 수리보다 외국어의 표준점수가 더 높았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를 '점수 인플레이션'이라면서, 표준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많아 상위권 학생의 선택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각 사설 학원이 발표한 표준점수 기준 대학 배치표는 들쑥날쑥했다. 일부 중상위권 대학 학과는 사설 학원에 따라 배치 점수가 무려 10점씩 차이가 났다. 전문가들도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차기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 아니더라도 대학 입시를 개선해야 한다고 느낀 국민이 많을 듯하다.

이런 혼란을 보면서, 뜬금없이 김윤배 시인의 시 '밤나무의 소망'이 떠올랐다. 충북 청주 출신인 그는 태풍으로 밤나무 농사를 망친 농촌 어르신의 심정을 충청도 사투리로 절절하게 읊었다.

'(중략) 밤농사가 거덜이 났으니 이제 어쩔뀨 증말이지 억장이 무너져유 날씨 원망하기는유 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어쩐대유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쥬 대책은 무신 대책이 있겄슈 허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규 산엘 올라야쥬 찢어진 밤낭구를 돌바야쥬 내보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눔이 밤낭구들 아니겄슈 탱글탱글한 밤알 하나 보름달빛 속으루 툭 소리내며 떨어뜨려보능게 밤나무들 소망 아니겄슈…(하략)'.

시인의 의도나, 읽는 이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엉뚱하게 수험생이 떠올랐다. '탱글탱글한 밤알 하나 보름달빛 속으루 툭 소리내며 떨어뜨려보능게' 밤나무의 소원일진대, 무엇 때문에 그 모진 태풍은 여물지도 않은 밤을 다 떨어뜨려 버리는지. 제 꿈 따라 훨훨 날아보는 게 아이들의 소원일 텐데 무엇 때문에 복잡한 대학 입시에 아이를 매달아 꾸역꾸역 밀어 넣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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