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쪽지 예산' 폐습,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013년 예산안 증액 심사를 하면서 관련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은 것을 두고 여론의 비판이 매섭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는 반드시 회의 내용을 기록하게 되어 있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할 의무를 회피한 것이란 점에서 중대한 문제다. 그래 놓고 계수소위 위원들은 서둘러 외유를 떠났다. 세금을 내는 주체인 국민을 우습게 알아도 한참 우습게 아는 오만이다.

예결특위는 감액 심사를 마친 뒤 증액 심사를 하면서 국회 회의장이 아닌 호텔방을 잡아놓고 '밀실 계수 조정'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원 사업 예산을 반영해줄 것을 부탁하는 '민원 쪽지'가 4천500건이나 밀려들었다. 예산안 처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기게 된 것도 이렇게 폭주한 '쪽지 예산'을 처리하느라 빚어진 사태였다. 물론 '호텔방 심사'에 참여한 국회의원들도 크게 '한 건'했다. 계수소위 위원 7명은 호텔방 심사에서 자기 지역구 예산을 정부안보다 517억 원이나 불렸다. 떡 장사 손에 떡고물 묻게 마련이라지만 정도 문제다. 이 정도라면 국가 예산의 '사유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를 위해 더 많은 예산을 따내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아니 지역구 국회의원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문제는 지역구 예산 따내기는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 절차를 거쳐 시비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계수소위 위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비판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쪽지 예산'은 그 자체로 정말로 필요한 예산인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정당한 예산이라면 정부의 예산안 편성 때 당당하게 요구하면 될 일이다. 결국 쪽지라는 비정상적 방법으로 계수소위에 밀어 넣는 예산이라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못 되거나, 그런 이유로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제외된 예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예산이 많이 통과될수록 나라에 정작 필요한 예산은 줄어드는 부정적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정치권은 예결특위를 상설 상임위로 바꾸고 계수소위 회의의 속기록도 반드시 작성토록 하는 등 뒤늦게 개선 방안을 들고 나왔다. 세비 삭감, 의원연금 폐지 등 정치 개혁 약속처럼 이것도 빈말이 될지 국민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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