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날, 우편함 속에서 한 통의 연하장이 보였다. 낯익은 반듯한 글씨체다. 사서함 O호의 주소를 가진, 뚜렷하게 적힌 이름과 함께 온 한 통의 연하장. 인터넷 문화가 범람하는 요즈음 연하장을 받기란 그리 흔치는 않을 터, 오히려 기뻐해야 할 처지임에도 느낌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건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더 많았기 때문일까. 그도 그럴 것이 사서함이란 일반인이 쓰지 않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단체생활을 하게 되는 군인이나 죄수들이 흔히 쓰는 주소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이었다. 아주 좋은 필체를 가진 낯선 이의 편지가 손에 쥐어졌다. 갈매의 겹선이 그려진 편지지 속에는 우발적인 일에 휘말려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가야만 했던 한 사람의 운명이 픽션처럼 그려져 있었다. 귀로에서 하루하루를 잃고 방황하던 중 어느 지면에서 나의 글을 읽었다고 하였다. 잃어버린 자신을 그 글 속에서 발견했다는 장문의 사연이었다. 답을 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음은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경계가 뚜렷한 그곳과 이곳, 수십 년 전 난생처음으로 그 너머에 가 보았다. 합창단원들과 갱생보호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OO소년원으로 나가 노래로 그들을 위안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마음처럼 또다시 내게 놓인 이 아득한 상황들이 교차됨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선입견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든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 개운치 않은 마음을 뒤로하고 오로지 책을 읽고 싶다는 부탁을 들어주기로 생각의 결론을 지었다. 그리곤 그가 원하는 다량의 책을 짤막한 답과 함께 보내주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춥다. 갖가지의 영상과 함께 폰으로 연하장을 대신해 날아온다. 누군가에게 넉넉한 필체를 내보이며 글을 적어본 지가 이젠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예전보다 흔전해진 생활이건만 외려 마음은 그 반대다. 엽서와 편지를 우편을 통해 보낸다는 것은 생소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 보내는 것은 더더욱 귀찮아하는 일이 아닌가. 귀찮은 수준을 넘어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편안함에 익숙해진 것들을 잠시 잊어봄도 여유를 갖는 것일 텐데.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물질의 가난함보다 마음의 가난함이 더 불쌍하다 했던가. 새해가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담은 연하장을 보내려고 문방구를 기웃거려 본다. 천태만상의 그림과 휘황찬란한 색채의 편지지, 그리고 감미로운 멜로디의 연하장을 연신 만져보고 펼치면서 낯선 이방인처럼 신기해하는 나 자신이 소수점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홑진 마음으로 작은 위안의 답을 저 너머에 보내본다.
윤경희<대구문인협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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