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로 '힐링' '청춘콘서트' '자기계발' 등이 있다. 그중 '재능기부'라는 단어도 역시 자주 듣는 새로운 단어다.
선진국으로 들어서면서 '기부'라는 단어가 우리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반갑고 바람직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재능기부'란 단체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를 말한다. 이런 운동은 주로 전문직종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기부 방식이었다. 이들이 가진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탄생한 단어다.
그래서 최근 많은 유명인들과 기업가들이 재능 기부에 참여해 우리 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재능기부를 활성화하려는 단체 또는 개인들의 다양한 움직임들 역시 보기 좋다.
이 사회적 바람은 예술계에도 영향을 줘 자발적으로 혹은 여러 단체들의 권유(?)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취지가 바람직하게만 사용되면 좋은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면도 있다.
음악이나 미술 디자인 등의 분야는 무형의 자원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재능 기부가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생산적인 물건으로서 가치가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재능 기부는 어떤 면에서 당연시되는 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 유명인이나 교수 등 경제적 어려움이 비교적 약한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기부가 될 수 있으나, 기부라는 간접적 압력을 받는 대다수의 가난한 예술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재능기부'라는 어감 때문에 하기 싫어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생계 기반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대다수의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재능 기부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능을 오직 생계 수단으로만 사용하다가 그것을 사회에 기부할 때 기부자들은 새로운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삶의 만족도가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생계 수단으로 삼기에도 부족해 시간적 물질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에게까지 억지로 재능 기부를 강요할 수는 없다. 개인이 가진 재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요구되는 '기부'는 어떤 의미에서의 무급 노동으로서 노동력 착취가 될 수 있다. 암암리에 강요되는 자선활동, 그것은 참된 기부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뿐인 것이다. 기부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 참여이며, 어느 누구도 강요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사람은 먼저 그 재능에 상응하는 존중을 받아야 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한 기부는 그 다음이 아닐까.
김상충(바리톤'이깐딴띠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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