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왔습니까? 이민을 왔습니까? 이민 온 사람들은 남으시고, 유학 온 사람들은 공부가 끝났으면 조국으로 돌아갑시다. 한국에서의 일류 대학은 포항공대가 마지막입니다."
고 김호길 박사가 1985년 미국 워싱턴에서 포항공대(현 포스텍) 교수 초빙을 위해 한국인 과학기술자 50여 명을 초청한 자리에서 한 연설이다. 당시 건물'교원도 없고 한국에는 개념조차 없는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설립 계획만 있는 대학에 선뜻 지원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초대 학장으로 내정된 김호길 박사와 이대공 설립추진본부장은 포기하지 않고 미국'유럽을 드나들며 과학자들을 설득해 나갔다. 둘 다 '속사포'와 '대공포'로 불릴 정도로 입담이 좋았고 열정적이었다. 1986년 12월 개교를 앞두고 외국에서 활동하던 우수한 과학자들이 속속 포항으로 모여들었고, 오늘날 포스텍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포스텍의 설립 과정은 그만큼 극적이었다.
포스텍은 계속 고공비행 중이며 포항의 큰 자랑이다. 세계 대학 평가에서 3년간 국내 대학 1위를 차지했고, 교수 1인당 SCI 논문 6.21편, 학생 1인당 교육비 7천873만 원으로 전국 최상이다. 얼마 전 포항대학 총장이 비리로 구속됐는데 한 공중파 방송사는 엉뚱하게 '포항공대 총장 구속'이라고 오보를 냈다. 방송사에서 포항에는 대학이 포항공대 하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하니, 대학의 유명세가 빚어낸 해프닝이라고 할까.
그런 포스텍이 요즘 큰 시련을 겪고 있다. 행정지원팀장이 국책 사업비를 횡령했다가 적발됐는데 그 배후에 현직 교수인 전 부총장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를 둘러싸고 온갖 억측과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텍의 도덕성에 큰 치명타다. 사실 그전부터 위기의 조짐이 뚜렷했다. 2010년 학교법인 포스텍이 부산저축은행에 500억 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버렸고, 전임 총장이 당시 생존해 있던 박태준 전 회장의 동상을 세우면서 논란을 불렀다. 초기의 순수했던 건학 이념에서 뭔가 뒤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 김호길 박사가 설립 당시 고 박태준 회장에게 "10년 안에 고부가가치 연구를 통해 포항제철 부설 포항공대가 아니라, 포항공대 부설 포항제철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포스텍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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