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美聲): 아름다운 목소리.
미성(微聲): 겨우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
발음은 같으나 단지 한자 한 글자가 다를 뿐인 두 단어가 요즘 세상에서 받는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최근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의 '맑고 고운' 미성(美聲)이 각광받고 있다. '천사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얻으면서. 실은 르네상스 시대의 서양에서도 변성기 이전 소년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카스트라토'가 찬사를 받았다. 요즘은 '카운터테너'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살펴보면 미성의 매력은 역사가 깊다.
미적으로 보면 매력적인 미성은 그러나 실용적으로 보면 적잖은 사람들의 고민거리다. 작고 가는 목소리인 미성(微聲)이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런저런 걸림돌이 되기 때문. 그래서 누구는 '침묵이 금'이라며 자신감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또 누구는 목소리 코칭이나 클리닉을 받고 심지어는 목소리 성형 시술을 받기도 한다.
◆천사의 목소리, 아이들의 미성이 뜬다
최근 방송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의 미성이 각광받고 있다.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연령층이 대체로 10대인 까닭도 있지만 유독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아이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달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 채널 Mnet(엠넷) '보이스키즈'에 참가해 뮤지컬 '애니'의 주제곡 '투모로우'를 부른 윤시영(11) 양은 청아한 음색과 엄청난 성량으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시영 양의 무대 영상은 현재 유튜브 조회 수 100만 건을 돌파했을 정도. 시영 양은 뮤지컬 배우인 아버지와 함께 뮤지컬에 여러 번 출연한 경력으로 노래 실력도 쌓았다고 밝혔다. 시영 양보다 앞서 SBS 'K팝스타2'에 참가한 동갑내기 방예담(11) 군은 나이답지 않은 천재성과 천부적인 리듬감에 미국 팝가수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을 닮은 음색으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담 군도 EBS 유아프로그램 '방귀대장 뿡뿡이'의 주제가를 부른 독특한 이력이 있다. 이외에도 현재 각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받고 있는 아이들이 수십 명이 넘는다. 모두 시청자들에게 앳된 목소리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실 아이들의 미성은 이전부터 대중문화계에서 인기 요소였다. 프로페셔널하지만 지루함도 주는 것이 사실인 대중음악 코드 속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을 불어넣었다. 배우 최불암이 내레이션을 맡고 당시 11살이었던 정여진 양이 노래를 부른 '아빠의 말씀'(1981)이 히트를 친 것을 비롯하여, 1985년에는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내 이름 예솔아'를 당시 5살이었던 이자람 양이 불러 인기를 얻었고, 1994년에는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을 당시 13살이었던 백동우 군이 '키드 버전'(kid version)을 따로 불러 원래 버전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었다. 김지현(14)'백보현(12)'김슬기(10'모두 당시 나이) 양이 부른 드라마 '대장금'(2004)의 주제가 '오나라'는 당시 국민 누구나 흥얼거리게 하며 드라마의 인기에 한몫했다.
◆카스트라토, 새소리 명창…
미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최근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서양에서는 '카스트라토'가 인기를 얻었다. 변성기 전의 소년에게 거세를 시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소프라노나 알토 등 높은 음을 내는 가수다. 가톨릭 성당이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활약했다.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파리넬리'(1705~1782)의 삶은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거세를 시키는 행위가 금지됐고, 요즘은 카운터테너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카스트라토가 신체적인 변화로 사춘기 전의 음성을 유지시킨다며 카운터테너는 사춘기 이후에도 가성을 훈련해 높은 음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클래식계는 높은 음을 내는 가수가 각광이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 등 높은 음을 내는 '하이 테너'들이 각광받고 있고, 교회음악에서는 여성 소프라노 대신 '보이(boy) 소프라노'들이 활약하고 있다. 특히 보이 소프라노의 경우 여성보다 더 섬세하면서, 변성이 되기 전 짧은 소년기에만 낼 수 있는 미성이 매력이다.
살펴보면 어른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각광을 받은 적은 없다. 짧은 유년 시절에만 낼 수 있는 목소리가 각광받고, 성장한 뒤에도 맑고 고운 미성의 매력을 발산하는 '희귀한' 가수들이 인기를 얻는 것.
미성의 인기가 서양 음악만의 얘기인 것은 아니다. 걸걸한 목소리가 전부인 듯한 우리나라 판소리계도 희귀한 미성의 매력을 발산해 인기를 얻은 명창들이 적잖았다. 1800년대 후반에 활약한 이동백은 새 소리를 그대로 묘사하는 '새타령'으로 고종의 사랑을 받아 어전에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정조 때 남학이라는 가수는 꾀꼬리 소리 등 고운 미성으로 당대를 주름잡았다.
◆남성은 미성 고민, 여성은 걸걸한 목소리 고민
키 180㎝에 연예인 '비'의 얼굴과 몸매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훈남' 직장인 김모(30) 씨.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을 때나 소개팅 등 이성을 만날 때는 외모와 달리 의기소침해진다. 가늘고 작은 목소리 때문이다. 전화를 받을 때는 10대 학생이나 여성으로 오해받고, 입만 열면 실망하는 이성의 표정을 본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 씨는 "외모와 목소리의 괴리가 콤플렉스다. 확성기를 목에다 심고 싶을 정도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큰 소리로 주문을 한 번에 해보고 싶다. 배우 이선균처럼 여성에게 매력을 끄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미성이 고민이다. 반대로 여성들은 걸걸한 목소리가 고민이다. 최근 한 이비인후과에서 20~40대 남녀 직장인 136명을 대상으로 목소리 만족도 조사를 했더니 절반이 "자신의 목소리에 불만이 있다. 목소리 때문에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작다' '프레젠테이션 등 남 앞에 설 때 목소리가 떨린다' 등의 이유였다.
취업준비생들은 입사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면접에서 목소리 떨림증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 용어로 근긴장성 발성장애라고 하는데 90%가량이 피로와 긴장이 원인이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물론 큰 소리도 낼 수 없다.
그래서 목소리 성형 시술을 받는 사람들도 적잖다. 고운 목소리가 콤플렉스인 남성의 경우 성대근육 중 목소리 톤을 높이는 근육에 보톡스를 주입해 마비시켜 높은 음을 내지 못하게 한다. 또는 성대근육에 보형물을 삽입하기도 한다. 대체로 음성 주파수가 70Hz 정도 낮아진다. 반대로 걸걸한 목소리를 지닌 여성의 경우 성대를 축소하면 높은 음을 낼 수 있다.
◆좋은 목소리는 최고의 외모
물론 목소리 성형은 구강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일부 시술받는 것이고, 노력으로 얼마든지 목소리를 바꿀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목소리는 물론 노래 실력 등 입으로 내뱉는 모든 종목은 꾸준한 복식호흡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피지기'가 필요하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고 결점을 발견해 고치는 것이다. 녹음해 들어보면 자기 목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실제 남들이 듣는 목소리다. 자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얼굴 안에서 진동하는 소리와 귀로 들리는 소리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
잘 다듬은 발성은 곧장 매력으로 연결된다. 최근 국내 한 병원에서 '목소리 좋은 연예인'을 조사했더니 남성 연예인의 경우 1위 한석규, 2위 박신양, 3위 장동건, 4위 이선균 등이었다. 모두 성대 접촉이 강하고 울림이 좋은 음색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발성을 피나게 연습한 배우들이다. 이외에도 연예계는 외모나 끼에 더해 목소리가 중요한 능력이다. 국민MC 유재석은 높은 톤이지만 안정감 있는 목소리로 예능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장금에 출연한 이영애와 선덕여왕에 출연한 고현정도 각각 편안한 울림 혹은 위엄 있는 울림이 지닌 '발성이 좋은' 배우들로 꼽힌다. 라온제나 스피치 임유정 대표는 "외모가 1차적 이미지라면 목소리는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2차적 이미지이고, 대인관계에서 호감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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