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여행수첩

차갑게 얼어붙은 대자연에, 봄을 열기 위한 박동소리를 듣고 은빛 바다의 청량한 외침을 나누기 위해 찾아온 남쪽 섬,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 땅 어디든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사람들이 어울려 삶을 이루다보니 이곳 또한 편리한 문명으로 올 때마다 많이 달라지고 있다.

드디어 문명의 이기로 얼룩진 도시를 떠나 새로운 시각을 찾고자 방랑자처럼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의 동행을 시작하려 했다. 그 시간 동안 문명에 파괴되지 않은 자연을 찾아 늘 머물고 있던 공간이 아닌 그 울타리 밖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찾아보고자 했다. 또한 광활한 대자연과 더 이상 문명의 손이 닿지 못할 원초적 자연인 구름이 펼치는 조형성에서 하늘 보기의 큰 감동을 내심 기대했다.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은 "나는 평화 속에서 존재하기 위해, 문명의 손길로부터 나 자신을 자유롭게 지키기 위해 떠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이 살던 프랑스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났다. 물론 처음에는 낯선 곳에 대한 설렘도 있었겠지만 이미 유럽의 문명으로 물들어버린 타히티 섬의 모습에 실망도 하였다. 그러나 차츰 타히티 섬이 그가 살던 곳과는 분명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넓고 푸른 바다, 때 묻지 않은 원시적 생명력이 출렁거리는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을 것이다. 오염된 문명을 거부하고 원초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갱은 타히티 섬이 예술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그만의 강렬한 작품 세계를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익숙했던 곳으로부터의 '분리'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분리공포를 이겨내며 즐겨야 한다는 말이 오늘따라 크게 울린다. 그 대상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속에서 분리되어 나와야만 진정한 자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갱 역시 분리를 통해 자아를 찾았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에게도 이곳으로부터의 분리를 위한 소박한 꿈의 비밀이 있다. 얼마를 더 있어야 실현될지 모르지만 조그만 핑계거리라도 생기면 찾게 된다.

감정의 굴곡이 자주 교차하여 그저 떠난다는 그 자체가 유년 시절의 고향처럼 포근하고 충분한 휴식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삶을 더 살아오면서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서인지 점차 잡다한 생각들이 무게를 더한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뚜렷한 목적지가 없는 나그넷길인가?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 무엇인가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라고 했다.

유채꽃 꽃망울이 터지는 아름다운 비명이 바다를 건널 때 나는 또 이곳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김윤종<화가 gilimi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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