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삼권분립의 위기

차기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내정됐던 김용준 후보자가 29일 전격 사퇴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게 됐지만, 삼권분립의 원칙을 고려할 때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헌법재판소장 출신인 김 후보자가 총리로 가는 것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재소장은 헌법을 해석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대법원장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데 총리가 대통령 다음의 높은 지위라고 해도 그 자리를 맡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이 문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김 후보자에 대해 헌재소장 출신 인사가 총리를 맡는 것이 온당한가보다는 개인적 적격성에 검증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전에도 대법관 출신이 총리가 된 사례가 적지 않아 이러한 문제에 둔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 김황식 총리만 하더라도 대법관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거쳐 총리에 임명됐고 김대중 정부의 김석수 총리나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총리도 대법관 출신이었다. 또 이명박 정부에선 김영란 대법관이 퇴임 후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백두진 총리와 정일권 총리가 국회의장이 되는 경우는 있었어도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로 옮겨간 사례는 거의 없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법관 이상의 경력을 지낸 사법부 고위직 출신 인사가 행정부로 쉽게 자리를 옳기는 풍토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풍토는 사법부에 몸담고 있으면서 행정부에서 일할 기회를 노리게 만들어 임명권자의 의중을 헤아리다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는 부작용을 빚게 할 수도 있다. 특별히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상황은 이러한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더 문제이다.

박 당선인은 법치를 강조하다 보니 사법부 출신 인사의 기용을 선호하는 듯하다. 김 총리 후보자를 택했을 때도 다른 대법관 출신 인사들이 총리 후보자로 함께 거론됐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성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려면 이러한 인사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 사법부 출신 인사들의 인식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적 영달을 꾀하다가 사법부의 권위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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