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일제 때 전 재산으로 학교 세운 최송설당

'길이 사학을 경영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

일제 때 전 재산으로 인재양성에 나서 오늘날의 명문 사학 김천중고등학교를 있게 한 주인공은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 김천 태생의 그는 외가 쪽이 홍경래 난에 연루, 증조부와 조부의 억울한 죽음에 어릴 때부터 누명을 벗겨 가문의 명예회복을 맹세했다.

아버지 죽음과 남편과의 사별 뒤 그는 김천 장터에서 장사로 부를 모았다. 1887년 상경, 권문세가 부인들과 사귀며 입궐에 성공, 영친왕 보모가 되고 귀비(貴妃)에 봉해지고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란 호(號)를 하사받았다. 고종과 명성왕후 뒤를 이은 엄비(嚴妃)의 신임으로 그는 1901년 어릴 적 맹세를 이뤄냈다.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몰적(沒籍)된 화순(和順) 최씨 가문의 죄를 사면하고 복권하라'는 고종의 어명이 내린 것.

조선 패망으로 궁에서 나온 뒤 자선사업에 나섰다. 흉년이 든 고향의 기아민들에게 곡식을 전했고, 금릉학원에 기부금을 내는 등 베풂의 삶을 살았다. 1930년 오늘 신문에 학교설립에 전 재산 기부를 발표했다. 이듬해 2월 전 재산 30만2천100원(현 300억원 추정)으로 송설학원(松雪學院)을 설립, 김천고등보통학교를 개교했다. 사후 학교 뒷산에 묻혔고 정부는 1963년 대통령 문화포상을 추서했다. 시문에 능해 200수 넘는 한시와 60여 수의 국문시가도 남겼다.

정인열<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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