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가고 대지에 따스한 봄기운이 감도는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한 노랫소리가 있습니다. 창작가요 '노들강변'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이 곡을 듣는 곳이 낙동강이나 한강 주변이면 더욱 좋을 듯하고, 그 강가에는 물오른 버드나무가 파릇한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계절이라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냥 부르는 노래도 무방하지만 만약 젓대나 장구 반주가 곁들여진다면 더욱 이상적인 분위기라 하겠습니다.
노돌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여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미드리로다
푸르른 저긔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돌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멧번이나 지여갓나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미드리로다
푸르른 저긔 저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돌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녕으로
재자가인 앗가운 몸 멧멧치나 데려갓나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녀서
이 세상 싸인 한이나 두-둥 실구서 가거라
이상은 경기민요의 대표곡이 된 신민요 '노들강변'의 가사 전문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를 제대로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부용(朴芙蓉·1901∼?)이란 이름의 기생 출신 가수가 불렀는데, 흘러간 시절, 봄날 오후의 나른한 시간에 라디오 전파를 타고 들려오던 '노들강변'의 애잔한 여운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약간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가락으로 가수가 구성지게 엮어가던 이 노래에는 고단하고 힘겹게 살아온 우리 겨레의 강물과도 같은 역사의 내력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 고단한 역사 속에서도 자기 앞에 휘몰아쳐 온 아슬아슬한 풍파를 모두 이겨내고, 마침내 환한 얼굴로 강바람 맞으며 우뚝 서 있는 강가의 아름드리 버드나무 같은 우리 민족의 듬직한 표상을 느끼게 합니다.
민요와 신민요가 어떻게 다른가 하면 전래민요는 작자가 따로 없고, 지역마다 그 특수성을 담아내고 있지요, 하지만 신민요는 1920년대 후반부터 일부러 만들었고, 그 때문에 지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잡가와 판소리, 민요 등의 영향 속에서 생겨난 신민요는 직업적인 가수가 국악기와 양악기 반주에 맞춰 부르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930년대로 보면 가수, 작곡가를 겸했던 김용환(金龍煥)이 조자룡(趙子龍)이란 예명으로 신민요 작품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신민요를 부른 가수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대개 기생 출신들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권번(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조합)에서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친 그녀들이라 발성이 이미 신민요를 부르기에 적합한 목청을 지니고 있지요. 1933년 평양 기생 출신으로 가수가 되었던 왕수복(王壽福)이 첫 테이프를 끊으면서 기생 출신 가수들은 마치 봇물이 터진 듯 떼를 지어 식민지 가요계에 나왔습니다.
낱낱이 호명해보자면 박채선, 이류색, 이은파, 선우일선, 박부용, 김복희, 김인숙, 한정옥, 미스코리아, 김운선, 왕초선, 김연월, 김춘홍, 이화자 등이 바로 그 꽃다운 이름들입니다.
기생들의 경우 직업적 이유 때문에 자신의 신분이나 이력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어느 때에 생을 마감했는지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동순(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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