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혁명 이후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71년 파리코뮨까지 혁명의 바통은 계속 이어졌다. 그 진동이 얼마나 강했으면 '프랑스 사람 셋만 모이면 혁명을 도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정치사회적 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한국 사람 둘만 모여도 정치 얘기'라는 말도 있다. 정치가 국민의 관심거리라는 점을 반영한 농담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는 정치에 대한 성토다.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불만의 표출인 것이다. 흔히 총선과 대선, 새 정부 출범 등 정치 이벤트가 많아서 정치 얘기가 많아진다고 착각하지만 엄청난 정치 비용을 들이고서도 작은 성과조차 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가 정치 얘기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우리 정치 얘기의 핵심은 대통령과 야당이다. 대통령과 야당이 대치하는 현 정치 상황은 분명 비정상이다. 타협과 양보라는 쪽문 사이로 국민들은 감정의 독이 잔뜩 묻은 설전과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자존심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처지다. 대통령도 야당 대표도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는 생경한 형국이 결국 정치 얘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을 압박하는 정치는 뜻이 순수하더라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상대를 설득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과 노력이 부족할 경우 리더십의 문제점을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야당도 분립과 견제를 빌미로 이런저런 갈고리를 거는 것은 옹졸한 정치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정치권이 대통령을 믿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딱딱한 대국민 담화문에 앞서 협조를 당부하는 이런 자세가 먼저였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스 대혁명기 대중의 지지를 한몸에 받은 로베스피에르가 "나의 힘은 거리에 있다. 파리 시민이 모두 내 편"이라며 반대파의 목을 옥죄기보다 타협점을 모색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가정법처럼 말이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를 놓고 벌이는 양보와 타협의 줄다리기다. 명분을 얻는 대신 실리를 포기하거나 실리를 위해 명분을 내놓는 것이 정치의 묘미다. 공허한 명분이나 치사한 실리에 매달리는 지금의 우리 정치는 누가 봐도 이상한 정치다.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단독] 국민의힘, '보수의 심장' 대구서 장외투쟁 첫 시작하나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