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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그 봄비-박용래(1925~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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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시집『강아지풀』(민음사, 1975)

새털구름은 가벼울까? 무게로 따진다면 만만찮다. 게다가 먹장구름이라면 그 무게는 엄청나다. 그렇게 무거운 것이 한꺼번에 떨어지지 않고 잘게 부서지고 뿔뿔이 헤어져 내린다. 겨울엔 눈, 그 나머지는 비다. 간밤 봄비가 내렸다.

이 시의 봄비는 어쩐지 서럽다. 만물의 형상을 따라 젖어, 혹은 고여서 운다. 다시 만나서, 한 몸이 되어서 운다. 만날 수 있고 고일 수 있고 모일 수 있다면 볼품없는 돌절구 바닥도 퍼질러 앉아 운다. 사실 비는 울지 않는데 시인이 운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눈이 젖어서, 비루한 삶이 비쳐서 그럴 것이다.

겨우내, 겨울이었다면, 이 비는 반드시 눈으로 내렸을 것이다. 김칫독에도 시래기 줄에도 마른 버드나무 가지에도, 부서진 돌절구 바닥에도 소복소복 쌓였을 것이다. 비천함은, 얼어 죽은 물-눈-이 살아나듯이 삶도 기지개-비-를 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꽃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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