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사람들의 추억이 어린 곳이자 휴식처인 대구 중구 달성공원. 정문을 지나 왼쪽 어린이헌장비 옆에 가면 수령이 300년 이상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조선 초기 문신 구계(龜溪) 서침(徐沈)의 이름을 따 '서침나무'라 불리고 있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달성토성은 고려 중엽 때부터 달성 서씨 들의 세거지였다. 그들은 달구벌의 주요 지배세력이었으며 달성, 동산, 남산, 계산동 일대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조선 세종 때에 관아 부지로 결정되자 이들은 달성을 쾌히 내놓았다. 조정에서는 그 공을 기려 상을 내리려 했으나 서침은 상 대신 주민들에게 거둬 들이는 환곡의 이자를 경감해 주도록 조정에 청원했다. 당시 민초들은 가난한 백성의 처지를 헤아리는 서침의 숭고한 마음에 감동해 서침나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달성공원 아닌 달성토성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헤아린 서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깃든 달성공원은 달성토성으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 1905년 일제가 이곳에 신사(神社)를 만들면서 공원이란 이름이 붙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달성토성이란 원래의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대구는 신라 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742∼765) 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옛 이름은 이 달구화 달불성(達弗城)에서 유래된 것. 달성은 경주의 월성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달성은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그들의 생활 근거지에 쌓은 성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발달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달성의 축조 시기에 대한 이견은 많지만 '삼국사기'에는 신라 첨해왕(沾解王)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합병된 뒤에는 군사요지로 중시됐으며 그 후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조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둔 일이 있다. 동물원은 1970년에 문을 열었다. 성의 규모는 동서 약 380m, 남북 470m이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됐고 주위 길이는 약 1천300m 높이는 4m 안팎이다.
◆달구벌 상징 공간
달성토성은 1천800여 년 전 삼한시대에서부터 시작해 신라, 고려, 조선, 근'현대에 이르는 대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 세력을 이뤘던 집단들이 거주했던 달구벌의 원형인 것. 이 때문에 달성토성은 대구를 상징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대구 시민의 가장 오래된 쉼터로 잔디광장, 자연적으로 자란 큰 나무와 조경수가 조화를 이룬 도심의 푸른 공간이다.
또한 달성토성에는 수많은 스토리도 깃들어 있다. 그중 하나가 잉어샘 이야기. 달성토성 안에 먹을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인 적이 있었다. 성 주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어느 곳을 파 보라"고 해서 일러준 대로 팠더니 물이 나왔다고 한다. 샘물은 찰 뿐 아니라 맛도 좋아서 영천(靈泉)이라 불렀다. 어느 날 조정에서 높은 벼슬아치가 오자,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물을 한 바가지 퍼 오라"고 했다. 그래서 달려가 물을 길어 올렸더니 두레박 안에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담겨 있었다. 쏟아버릴까 하다가 이전에 없었던 일이라 그대로 가져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더니 "물맛이 참 좋다"고 칭찬하면서 "잉어는 음식으로 만들라"고 했다. 그 뒤부터 귀한 손님이 올 때마다 그 인원만큼 잉어가 나와서 '잉어샘'이라 불렀다.
◆다시 돌아와야 할 달성토성
대구의 역사를 대표하는 공간이자 망국(亡國)의 한(恨)을 동시에 간직한 달성토성. 명칭 회복과 함께 달성토성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물원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인근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과 연계한 종합적인 복원을 통해 도심 재창조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2010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달성역사공원 조성을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의 대구지역 선도사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172억원을 들여 달성토성을 원형으로 복원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 일제에 의해 사라진 대구의 모태적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대구의 역사적 상징성을 되살리자는 게 그 골자다.
하지만 국책사업 확정 이후 3년여 간 첫 삽조차 뜨지 못할 정도로 달성토성 복원은 지지부진한 실정. 토성 복원에 시동을 걸지 못하면서 국비 반납이라는 위기에 몰린 대구시가 최근 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그나마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토성 복원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 왔던 동물원 이전 논의도 활기를 띠고 있다. 동물원 이전과 발맞춰 성벽과 내부 원지형, 문화유적 등을 복원하고 진입로, 산책로, 토성 탐방로 정비 등의 추진도 모색되고 있다. 야외공연장 및 역사 공간 조성 등을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한편 기원 전후 청동기 시대부터 삼한, 신라,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시대별 이야기를 재현하고, 공원 앞을 지나는 달서천을 복원해 수(水)공간으로 꾸미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미꾸라지샘(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부친께 고아 드려 병을 낫게 했다는 미꾸라지를 건져 올린 샘) 등 예부터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들을 스토리텔링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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