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육감일지도 모르겠으나 요즘 민중들은 슬픈 현실에 관련된 것이나 쓸쓸함 혹은 감정적으로 힘이 들게 하고 마음을 심란하게 요동치게 만드는 문화에 관심을 용납지 않는 듯하다. 영화인이기에 아무래도 주로 영화에 관심이 있는 자로서 요즘 관객들의 영화 선호도에 대한 수요를 지켜보다 보면 이러한 감정을 내포하는 영화에 관객들은 거의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에 이어 많이들 지쳤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도 빠르게 사회가 커지고 복잡하게 변하는 사이 민중들은 그저 사회 변화에 대략 맞추다시피 쫓아가고 있고 든든히 지탱해 주어야 할 사회의 균형은 흔들거리는 이빨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스스로도 지탱하기 어려운 불안한 상황 속에서 민중의 삶의 스트레스는 최고조로 치닫고, 현실이라는 박스 안에 갇힌 채로 호흡을 위해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미친 듯이 벽을 쳐대고 있다. 이런 다급한 두드림에도 반응이 없는 세상을 바라보던 민중들은 가장 손쉬운 대안으로 간편한 감동과 안전함을 주는 두 시간짜리 영화에만 돈과 시간을 할애한다.
사실 요즘 세상의 '힐링'이라는 것은 그저 복잡한 생각을 중단시키고 내려놓는 것이며 혹은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고달픈 자의 말을 들으며 동변상련 내지는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 조금은 낫구나 하는 위안을 받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 역시도 이런 경우로 위안을 받는 순간들이 숱하다. 실제적으로도 개인적 여유와 고요함을 요구할 권리가 없는 듯한 지금의 환경 안에서 멍텅구리 같은 세상에 대한 신경을 일시적으로나마 끊어내거나 자신과 타인의 비교 우위를 정하는 방법으로 위안을 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힐링일 테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 사랑도 귀찮고 사람도 귀찮고 본인들이 겪어내고 체험하여 알아내야 하는 현실을 스스로 중단시키고 묵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민중들이 손을 놓아버린 꼴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니 손을 들어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속속 일어난다. 이러한 상태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뉴스들은 늘 성폭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이거나, 연예인들의 개인사들을 마치 광맥을 발견한 것처럼 오버하며 떠드는 기사들뿐이다. 이런 알맹이 없는 기사들이 대중을 현혹시키고 기사의 카피본들은 민중들을 가십거리의 중독자들로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가십거리의 당사자가 된 사람은 한동안 세상의 죄인으로 낙인찍혀 버린다.
인터넷 최강국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이 세계 최고의 강간공화국이라고 소개하기 바쁘고 더불어 연예인 개인 일상의 삶을 족쇄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문화를 노래하고, 그래도 꽤 잘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보아야 하는 것일까.
허구한 날 강간과 성폭행 기사에, 어느어느 정치인이 헛소리를 했다는 기사에, 코스피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코스피지수가 어떠느니 떠드는 소리나 듣느니 차라리 상냥하게 날씨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캐스터의 설명을 들으며 내일 혹은 주간의 날씨를 상상하는 게 100배는 더 마음의 여유와 힐링을 하는 시간일 테다. 밤낮으로 딸자식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고 제목 글에 낚여 알맹이도 없는 글을 쳐다보며 허무해해야 하는 순간들에 마치 황사로 가득한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백이 필요하다. 딴짓도 필요하고…. 이제는 다리 떤다고 욕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 다리의 떪이 좀 더 생각하고 사고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라는 것쯤은 아는 시대가 아닌가? 이제 내 안으로 고요히 파고들고 그 안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 정리된 생각으로 세상을 둘러볼 줄 알아야 한다. 늘 사회에 쫓기고 세상에 쫓기고 사람에 쫓기고 지식에 쫓기고 미래에 쫓기는 짓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나를 고민하고 나를 상상하고 그런 자신의 고민과 상상을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나누며 얻게 되는 건강함의 지혜를 서로서로 전염시켜 나가야 한다. 늘 일을 받아가듯 자신을 일에 맞추고 전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자석의 반대 극을 억지로 연결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느껴야 한다.
양익준<영화감독 koreaac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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