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욕망을 상실한 '사토리 세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란다.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끝없는 소비'를 전제로 출발한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을 개발해 소비자의 구매를 부추기고, 노동자에게 인센티브 같은 동기를 부여해 생산성 향상을 유도한다. 경영학의 한 분야는 인간 심리를 연구해 잠재된 욕망을 일깨우거나 불어넣어 소비와 생산성 증대를 이끌어내 자본주의의 유지'성장에 봉사한다. 이런 이유로 감각적인 카피나 이미지로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린다.

적절한 욕망은 자본주의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이를 구매하고, 그 수입의 일부가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돌아가고, 노동자는 소득의 일부를 소비하는 선순환이 원활하면 말 그대로 경제가 돌아간다. 하지만 경제 주체의 욕망이 지나치면 경제는 삐걱거리게 된다. 특히 기업이 소비 욕망을 지나치게 부추기거나 잉여 생산(이윤)을 독식하게 된다면(임금을 올려주지 않고 재투자나 고용을 외면한다면) 경제의 흐름은 왜곡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미약할 경우 그 왜곡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해진다. IMF 구제금융 사태, 글로벌 외환 위기, 신용카드 대란, 가계 부채 대란, 청년실업, 소득 양극화, 하우스푸어 양산, 과다한 사교육 등은 과잉 욕망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숱한 경제난을 겪으면서(지금도 혹독하게 겪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욕망)를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국가는 부도 위기에 놓였다. 많은 기업들은 부도 및 경영 위기를 맞았고, 대량 해고와 경기 악화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앉고 가족은 흩어졌다. 목숨까지 버리는 일들도 벌어졌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경제난을 겪은 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의 강물'을 마시고 만다. 기업과 금융회사는 '오늘을 즐겨라'며 신용카드를 만들고 대출을 받으라고 부채질한다.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내일'을 저당 잡혀 '오늘'의 쾌락에 빠진다.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신용카드를 긁어 고급 차와 명품 가방을 구입한다.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사토리(悟り) 세대'(사토리는 '깨달음'을 뜻한다)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들이 많다. 사토리 세대는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 없는 젊은이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경제적'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는다. 일본교통공사에 따르면 20대 해외여행자는 2000년 417만 명이었으나 지난해 294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또 30대 미만 독신 회사원의 자동차 보유율은 1999년 63.1%에서 2009년 49.6%로 감소했다. 대학 진학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일본 도쿄에 있는 와세다대학의 지원자가 최근 5년 사이 1만 명 정도 줄었다고 한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지방 학생들이다. 이 같은 현상은 도쿄 소재 다른 대학에도 나타나고 있다. 반면 지방 대학들의 지원율은 강세를 띠고 있다. 현지 입시 전문가들은 대졸 취업난 때문에 도쿄 유학 비용을 취업 후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배려해 집 가까운 대학을 선호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불황 속에도 여전히 서울의 명문대를 선호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된다.

일본 청년들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사토리 세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난 청년들이다. 이들은 거품경제 붕괴 후 이어진 불황('잃어버린 20년') 속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욕망을 억제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사토리 세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미래를 현실적으로 보는 현명한 세대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소비를 주도해야 할 젊은이들이 구매를 꺼려 경기에 먹구름을 끼게 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혹자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의 '자발적 가난'이나 반자본주의적 성향과 관련짓는데, 이는 성급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사토리 세대의 등장이 장기 불황에 따른 불가피한 금욕인지, 물질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적 반성인지 현재로선 판단이 어렵다. 다만 우리가 마음을 쏟아야 할 부분은 '3포 세대'(취업'결혼'출산 포기한 세대), '88만 원 세대'(저임금 비정규직)로 불리는 한국 청년들의 현실과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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