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계석의 투수와 포수…말의 '토스' 입담의 승부

대구야구장의 조연, 프로야구 캐스터-해설위원

TBC 김대진 캐스터-2007년부터 야구중계 뛰어들어, 사회인 야구팀 1루수 활약 중.
TBC 김대진 캐스터-2007년부터 야구중계 뛰어들어, 사회인 야구팀 1루수 활약 중.
TBC 서석진 해설위원-경북고 한양대에서 선수로 활약. 경북고 감독하며 이승엽·배영수 등 배출
TBC 서석진 해설위원-경북고 한양대에서 선수로 활약. 경북고 감독하며 이승엽·배영수 등 배출
대구MBC 홍승규 해설위원-대구상·성균관대 거쳐 삼성서 외야구. 연봉계약 하일성·허구연 씨 이어 세 번째
대구MBC 홍승규 해설위원-대구상·성균관대 거쳐 삼성서 외야구. 연봉계약 하일성·허구연 씨 이어 세 번째
대구MBC 서상국 캐스터-부산서 고교·대학 나온 정통 \\
대구MBC 서상국 캐스터-부산서 고교·대학 나온 정통 \\'갈매기\\'. 2000년 입사 후 완전한 삼성 열혈 팬.

가끔은 주연보다 조연이 빛날 때가 있다. 물론 깊은 내공이 뒷받침돼야 한다. 때로는 훈수꾼에게만 보이는 묘수도 있다. 극강의 고수여서가 아니라 '밖에서'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700만 관중을 돌파하면서 최고 인기 스포츠로서의 입지를 과시한 프로야구도 비슷하다. 주인공이야 당연히 선수들이지만 TV'라디오 중계방송을 책임지는 해설가'캐스터의 역할은 '약방의 감초' 그 이상이다. 하기야 야구장의 중계석은 그라운드보다 높은 2층이라 경기가 더 '잘' 보이기는 하지만….

◆TV중계는 좀 쉴 수 있지만…라디오는 꼼짝 못해

이달 2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 삼성라이온즈 선수들의 훈련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올해 지역 방송의 프로야구 중계를 맡은 대구MBC 홍승규(53) 해설위원'서상국(42) 캐스터, TBC 서석진(56) 해설위원'김대진(38) 캐스터다.

이들 가운데 방송 데뷔는 홍 위원이 가장 일찍 했다. 삼성에서 외야수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고 1990년 은퇴한 그는 1994년부터 배트 대신 마이크를 잡고 있다. "당시 회사에 전문인다운 처우를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연봉 계약을 맺자고 하더군요. 아마 국내에선 하일성'허구연 씨 다음이었을 겁니다. 물론 돈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20년 전에 비하면 야구해설가의 위상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요."

경북고'한양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서 해설위원은 지난달 30일 개막전이 데뷔 무대였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홍 위원보다 선배다. 대구상고'성균관대를 졸업한 홍 위원과는 경기장에서 수도 없이 만난 사이다. 일찍 지도자의 길을 선택, 경북고'탐라대 감독을 지내면서 김현욱 코치, 이승엽·배영수 선수와 같은 스타플레이어를 키워냈다. "줄곧 선수들만 가르치다 TV 해설가 제의를 받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말주변이 별로 없거든요. 아직은 머리에 있는 지식들을 입으로 전달하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옆에 있던 홍 위원은 "서 위원님의 비주얼이 좋으니까 방송국에서 선택한 것"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서 위원의 말대로 해설은 평생을 야구장에서 보낸 전문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TV보다 라디오가 더 어렵다고 한다. TV는 화면이 나가는 덕분에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지만 라디오는 순발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상황에다 더그아웃 뒷이야기까지 맛깔스럽게 곁들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해설가들에게는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캐스터와의 호흡이 절대적인 성공 조건이다. 홍 위원은 "라디오에서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을 서로 '토스'해야 한다"며 "때로는 사전에 이야깃거리에 대해 미리 입을 맞춰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서 위원 역시 "첫 방송을 마치고 보니 말하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마이크 잡고 몇 달은 지나야 겨우 운동장 보여

각각 6년, 3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TBC 김대진, 대구MBC 서상국 캐스터는 그만큼 이들에게 든든한 존재다. 문경 문창고와 부산외대를 졸업한 김대진 캐스터는 2007년부터 야구 중계방송에 뛰어들었다. 프리랜서이지만 줄곧 TBC에서만 일해온 덕분에 지역민들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사회인 야구팀에서 1루수로 활약할 정도로 야구광이다. "처음에는 제 코멘트가 공 따라다니기에 바빴죠. 하지만 몇 달 정도 경험이 쌓이니까 그라운드 전체 상황이 보이더군요. 시속 200㎞로 운전하면서도 전후좌우를 살피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2000년 대구MBC에 입사한 서상국 캐스터는 부산 동천고'부산대를 졸업한 '정통 갈매기'이지만 대구 사람이 다 됐다. 가장 기억나는 중계 역시 2011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경기를 꼽는다. "마치 제가 우승한 것처럼 흥분되고 기뻐서 어떻게 중계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이 경북고 재학 시절 잠실야구장 개장 경기에서 홈런을 때렸던 순간도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이고요."

야구 경기는 보통 3시간 이상 걸린다. 토크쇼처럼 다른 패널 참석자도 없이 해설가와 캐스터, 단 두 명이 몇 시간을 이끌어가야 한다. 방송사고는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들었다. 서 위원은 첫 방송에서 김 캐스터의 말에 "네. 그렇습니다"만 연발하는 실수(?)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서 위원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 캐스터는 "선수 출신 해설가들은 종종 '포볼'(four ball)과 같은 정확하지 않은 용어를 쓰곤 하지만 방송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레 해소되는 문제"라고 했다.

방송사고 못지않게 이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편파 중계' 논란이다. 대구경북민 위주의 방송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지역에 삼성 팬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투리 덕분에 조금은 투박하게 들리는 해설에 박수를 보내주는 팬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일부 '안티 팬'은 방송국에 거칠게 항의전화를 걸기도 한다. 서'홍 위원은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면서도 "무조건 편드는 것보다 매섭게 꾸짖을 때 팬들이 더 큰 호응을 보내준다"고 했다. 서 캐스터는 "지역 시청취자들을 위한 건강한 편파는 필수"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물론 삼성에서 뛰고 있는 선수 및 코칭스태프 모두가 서'홍 위원의 후배 또는 제자들인 만큼 삼성 선수단과의 관계는 돈독하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만나 이런저런 정보도 주고받고 전날 실수한 선수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홍 위원은 "야구 중계는 몸에 밴 일상"이라며 "고시공부하듯 마음먹고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도 했다.

◆경기 3시간 전 경기장 도착

지역 연고 팀을 사랑하는 마음은 징크스에서도 드러난다. 김 캐스터의 경우 경기기록지 작성 순서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앞서 승리를 거뒀던 경기에서 기록했던 순서대로 다음 경기 기록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서 캐스터는 "긴 시간 지치지 않고 좋은 중계를 하기 위해 초콜릿을 쉴 새 없이 먹는 게 버릇"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삼성은 정규 시즌에서 128경기를 치른다. 이 가운데 절반이 어웨이(away) 경기다. 포항에서 열리는 9경기를 포함하면 출장 횟수는 더 늘어난다.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가정 불화(?)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정반대였다. 홍 위원은 "야구선수들도 원정경기가 많은 덕분에 부부 금슬이 더 좋다"고 했고, 김 캐스터는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적은 게 안타깝지만 아내는 집에서 야구 중계 보느니 차라리 출장 가는 게 더 낫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러면 통상 3연전으로 치러지는 출장 동안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선수들은 호텔에서 여가를 보내지만 이들은 여관이 숙소여서 호사를 누리기는 힘들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미리 인터넷 등으로 맛집, 관광지를 검색해보는 설렘도 있지만 서울처럼 자주 가는 곳에선 그냥 숙소에서 쉴 때가 많다. 단, 어디에서나 경기 시작 3시간 전에는 경기장에 도착, 방송을 꼼꼼히 준비한다는 게 철칙이다.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야구 시즌이 끝나면 이들은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간다. 홍 위원은 수 년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서 위원은 야구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 김 캐스터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대구에 벌여 놓은 일이 많다"는 이유로 거절할 만큼 바쁜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누구보다 시즌 개막을 기다려온 것도 바로 이들이다. 홍 위원은 "젊은 선수들을 시청자들에게 많이 알리려고 한다"며 "스프링캠프 등을 통해 눈여겨봐 둔 선수들이 있다"고 전했고, 서 위원은 "세대교체에 성공한 삼성이 신구 조화를 이뤄야 올해도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며 "냉철한 비판자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이 중계석에서도 '홈런'을 펑펑 때리길 함께 기원해보자.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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