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외 광고업을 하는 이종기(64'경북 고령군 고령읍) 씨는 다른 사람에 비해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 읽는다기보다 연구한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특히 제목을 열심히 읽는다. 문법이나 띄어쓰기,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찾아낸다. 그러고선 신문을 가위로 오려 정갈하게 스크랩한다. 신문뿐만 아니라 도로나 거리의 간판이나 현수막, 비석 등에 잘못 표기된 것들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 씨는 스크랩하고 사진을 찍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신문사에 전화해 잘못 표현된 것을 지적하며 항복(?)을 받아낸다. 그리고 수정을 요구하거나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점잖게 타이른다. 도로나 거리의 간판이나 현수막도 출처를 찾아내 바로잡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말을 잘 듣지 않아요. 잘못됐다고 수긍은 하는데 바로잡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어떤 이들은 뭐가 잘못됐는지도 몰라요. 안타깝죠."
이런 사례는 많다. 오래전에 이 씨는 영덕 강구항 입구에 서 있는 기념비에 '竣工'(준공)이란 한자가 '竣功'(준공)으로 잘못 표기돼 있어 영덕군에 전화해 시정을 요구했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틀린 것은 맞는데 돈이 많이 들어 수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 씨는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다"며 "하지 않았다면 공무원 자격이 없다"고 했다.
◆"어린이 보호구역(×) 보호구간(○)"
이 씨는 초등학교 앞 도로에 있는 '어린이 보호구역'이란 안내판도 틀렸다고 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니라 '어린이 보호구간'이 맞다는 것. 면적보다 거리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구간'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또 '어린이 보호 해제' 안내판도 '어린이 보호구간 해제'가 맞다고 했다.
"맞게 쓴 곳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틀렸어요. 바르게 고쳐 써야 합니다. 그것도 학생들이 많이 보는 학교 앞에서…."
음식점에도 틀리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많다고 했다. '공깃밥'을 '공기밥', '찌개'를 '찌게', '갈치'를 '칼치'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는 것. 각종 비석이나 현수막에도 중간점 사용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했다. '6'25', '3'1절'을 '6.25', '3.1절'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외래어 표기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워크숍'이 맞는데, '워크샵'이나 '워크 숍'으로 표기한다는 것. 외래어 표기법상 숍이 맞고, 한 단어이기 때문에 붙여 써야 한다는 것. "어떤 이는 'workshop'을 'work shop'이라 자랑스럽게 쓰는 사람도 있어요. 안타까움에 앞서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2월에 있은 대통령 취임식과 관련해서도 한마디했다. '제18대 대통령 취임식'도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으로 해야 맞다는 것. "사람도 없이 취임식을 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대통령 이름이 들어가는 게 맞습니다."
이에 앞서 1980년에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 취임식 현수막도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처럼 '식'자가 빠진 채 내걸렸다고 했다. "2월, 박 대통령 취임식 며칠 전 TV를 보고 표기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와 신문사 등에 전화했지요. 하지만, 대부분 담당자가 없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얼버무리고 지나쳤어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잖아요."
선관위와 경찰 등에도 한마디했다. 선거사범 신고자에 대해 지급하는 '보상금'도 '포상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또 시위할 때 내거는 현수막에 쓰인 글 중 '~왠 말이냐'도 '~웬 말이냐'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 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병원에서 일하던 중 광고업을 하는 형님을 대신해 일하면서부터다. 이 씨가 제작한 대가야 축제에 관한 현수막이 매일신문에 큼지막하게 게재됐다. 자신이 만든 현수막이 신문에 게재돼 너무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글씨는 잘 썼는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렸던 것.
◆맞춤법 공부 초교교과서 달달 외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나름대로 10년 동안 병원 일을 하면서 공부도 했는데…."
이 씨는 그때부터 한글 문법과 맞춤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초등학교 교과서를 구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교과서를 껴안고 달달 외웠다.
이후 이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을 본다. 하루에 보는 신문만 15부. 중앙지는 물론 지역 신문까지 모조리 읽는다. "신문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틀린 부분은 가위로 오려 스크랩한다. 도로나 거리의 현수막이나 간판은 사진을 찍어 보관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만 약 3천 장이 넘는다. 30여 년 동안 모은 신문 자료는 작은 방을 가득 채울 정도다. 이 씨는 이를 자료로 만들어 2009년 대구와 포항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신문 제목만큼은 틀려선 안 됩니다. 특히 지역 유력지인 매일신문은 더욱 그렇습니다.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지요. 교과서처럼 생각하는 학생이나 독자들이 많거든요."
이 씨는 자신은 자격증도 없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으며, 전문가도 아니라고 했다. 광고업자로서 몇 자 되지 않는 간판이나 현수막에 잘못 표기된 것을 보면 부끄럽다고 했다. 이 씨는 언젠가는 TV 등에 출연해 생활 속에 잘못 쓰고 있거나 틀린 부분에 대해 교육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청소년을 상대로 강의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 씨는 오늘도 바쁘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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