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나는 왕이다

일상에서 마음으로 느끼는 맛이 '최고의 맛'

중용 4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이것을 '지미(知味)의 철학'이라 일컫는다. 음식 맛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인생의 맛은 제대로 알까. 이 책은 그 해답으로 '똑똑하고 잘난 자들은 늘 넘치고, 어리석고 못난 자들은 늘 뒤처지기 때문이다'(知者過之愚者及賢者過之不肖者不及)라고 풀이하고 있다.

유능하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명예와 돈을 위해 뛰다 보니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이를 먹어 간다. 그러다가 정년을 맞아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면 "아차!" 하고 문득 자신의 인생이 그리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 역시 인생의 참맛을 모르고 어영부영 살다가 일생을 마치기 일쑤다.

인생의 맛을 알고 음식의 참맛을 아는 '지미의 인생'은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이뤄내기가 그리 힘들지 않다. 그것은 결코 돈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며 권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송나라 때 소강절(邵節康)이란 이는 어느 날 늦은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느낀 산들바람 기운을 인생의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 읊은 적이 있다. 그 맛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도, 함께 느낄 수도 없는 오묘한 맛으로 특별하거나 기이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음으로 느끼는 맛이 지고지미(至高之味)가 아니겠는가.

그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의 말대로 남들이 맛있다는 음식을 먹어보고 그 맛의 느낌을 글로 써왔다. 최근 중용을 들춰보다가 앞서 말한 '사람들은 음식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대목을 읽다가 느낀 바가 적지 않았다. '내가 먹고 다니는 음식 맛을 나는 제대로 아는 걸까'란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스스로가 '지미의 철학'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살다 보면 하나의 낱말이나 문장 하나가 전기의 스파크 현상처럼 엄청난 파장으로 깨우침과 각성을 불러올 때가 있다. 안거에 들어가 화두 하나를 붙잡고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무릎 밑으로 기어들어오는 개미 한 마리를 보고 크게 깨치는 경우도 있다. 중용의 '음식 맛도 모른다'는 한 구절이 내게 있어 선방의 개미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최근 이른 봄맞이 남도 여행을 떠나면서 종전까지 해오던 해산물 구매 방식을 확 바꿔버렸다. 설익은 고급 취향을 버리고 옛날 방식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단골인 전라도 녹동 어시장 현성수산(정순자'010-5139-4710)에 전화를 걸었다. "갯것들 좀 준비해 주세요. 다리가 떨어진 낙지도 괜찮아요." 갯것이란 횟감용 활어를 제외한 바지락, 굴, 소라, 키조개, 피꼬막, 주꾸미를 비롯하여 톳, 매생이, 파래까지 갯가에서 나오는 모든 기타 등등을 말한다. 갯가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파는 난전을 갯것전이라 부른다.

기타 등등이란 표현을 쓰고 보니 뮤지컬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율 브리너가 말끝마다 '익세트러'(extra)를 연발하던 장면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이날 어시장에 도착하여 주꾸미를 비롯하여 어판 위에 널려 있는 온갖 것들을 쓸어 담으며 갯것 왕국의 왕이나 된 것처럼 '익세트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장애 낙지는 물론 해삼, 멍게, 간재미 등 기타 등등을 덤으로 듬뿍 얹어 주었다.

도반들과 함께 나로도 바닷가에 있는 '하얀 노을'이란 멋진 펜션에 도착했다. 여러 가지 갯것들을 총총 썰어 밥솥에 넣고 밥을 지었다. 갯것 왕국의 저녁 만찬은 '지미의 철학'을 실천하는 갯것 비빔밥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익세트라 익세트라! 나는 갯것 왕국의 왕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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