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드라마의 '미스김' 현실의 '미스김'

장규식이 정주리에게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붓는다.

"식구처럼 지내자고 했지, 누가 진짜 우리 집 식구라고 했냐? 내가 왜 계약직들한테 언니라고 부르는지 모르나 본데 그건 식당 가서 이모, 지나가는 여자한테 아줌마라도 부르는 거랑 똑같은 거야~. 나는 우리 집 허드렛일 하러 온 뜨내기들한테 이름 불러주는 것도 아까워!"

망치로 한 대 턱 맞은 것 같은 그 기분… 정주리도 느꼈고, TV를 보고 있는 나도 느꼈다. 각자의 목에 매달린 정규직의 '사원증'과 비정규직의 '출입증'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른 명찰이다.

문화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비정규직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은 드라마 '직장의 신'이 인기몰이 중이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이 당시 파견직이 300만 명에 달했던 일본의 사회상을 다루었다면, '직장의 신'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능력 있는 정규직 '장규식'(오지호)과 원더우먼에 버금가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슈퍼 비정규직 '미스김'(김혜수), 좌충우돌 실수투성이 사회 초년생 비정규직 '정주리'(정유미)의 모습을 통해 '비정규직 천만 시대'의 설움과 애환, 그리고 문제를 코믹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다루고 있다.

'직장의 신'의 '미스김'은 기존과 다른 파격적인 비정규직의 모습을 보여준다. 칼출근, 칼퇴근을 하고, 똑 부러지게 할 말을 다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 업무의 연장이라며 회식에 참가하라는 상사의 요구를 당당히 거절하고, 참가한 후에는 회식 수당을 청구한다. '미스김'의 모습은 보는 내내 통쾌하고 시원하다. 묘한 대리 만족의 기분까지도 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드라마' 속 주인공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앞의 현실은 이보다 더 잔인한 '리얼'이다. 계약 해지가 될까 봐 임신 사실도 숨기고, 부당한 업무 지시도 참고, 온갖 차별과 멸시를 감당해야 하는 '눈칫밥 인생'이 바로 현실의 비정규직 모습이다.

지난 4월 14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 도급 업체에서 촉탁직으로 전환해 근무하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 해지 석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촉탁직은 일반적으로 정년퇴직 이후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불법 파견으로 일한 지 2년이 되면 직접 고용 의무가 생기는 '개정파견법'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려 비정규직으로 1천400여 명을 직접 고용했다. 사측의 횡포 속에 같은 일을 하면서도 파견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또다시 해고자로 전락해 버린 노동자들은 '파리 목숨'에 불과했다. 같은 자동차의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달고,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다는 자동차 공장의 모습은 현재 비정규직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임금 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상여금, 성과급 지급에 있어서도 차별은 비일비재하다. 수당과 복지 혜택은 말할 것도 없다. 하다못해 명절 선물로 정규직은 과일을, 비정규직은 치약과 비누 세트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정규직 천국은 몰라도 '비정규직 지옥'은 확실한 듯하다.

내일은 123주년 노동절이다. 노동절은 근로기준법이 지정한 유급 휴일이다. 하지만, 학교 비정규직은 공무원이 아님에도 노동절에 쉬지 못한다. 그렇다고 당연히 줘야 하는 유급 휴일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노동절이 관공서 공휴일은 아니기 때문에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교육청은 비정규직은 학교장과 자율적 고용계약 관계에 있다며 '나 몰라라' 한다. 공무원 '대우'는 해주지 않으면서, 공무원'처럼' 일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필요에 따라 때로는 '식구'라 부르고, 때로는 '남'이라 부르는 비정규직 차별의 관행과 문화가 만연하는 한 비정규직의 눈물은 마를 수 없다.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에도 급이 있다지만 모두 저마다 소중히 빛나는 존재이다.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adultbaby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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