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경북 안강 옥산서원·경주양동마을

부드러운 봄바람 맞으며 느림과 과거로의 여행

봄은 햇살도 화사하지만 바람결도 부드럽다. 특히 자전거 위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바람은 환상적이다. 그 맛에 자전거를 탄다.

이날 목적지는 경북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 대구에서 출발해 하양읍과 금호읍을 지나 영천시로 들어섰다. 포도의 고장답게 들녘에는 포도나무가 많이 보였다. 벌써 농부들이 포도밭을 손보고 있었다.

옥산서원은 우리나라 5대 서원(대구 도동서원'안동 병산서원'영주 소수서원'안동 도산서원'옥산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사적 제154호로 등록된 옥산서원은 경주의 부윤 이제민이 회재 이언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안강고을 선비들과 함께 지은 서원이다.

자연 속에 고이 간직된 서원 입구 주변에는 우람한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사이로 작은 폭포수가 흐른다. 옥산서원은 전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적 수가 가장 많은 서원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 중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524호로 지정된 '정덕계유사마방목'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해동명적'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소리, 새소리와 함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아름다웠다. 특히 계곡물 흐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우리 옛 조상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원과 주위 풍경이 너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옥산서원은 너무나 조용해 적막감마저 들어 숨소리 내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잠시 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봤다. 문득 이제까지 살아온 힘들고 어려웠던 삶의 여정들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마음에 있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옥산서원은 한동안 나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옛날로 돌아가 이런 툇마루에 앉아서 글을 읽고 시를 읊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느낌과 생각 때문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다.

옥산서원 뒤편으로 가니 '독락당'이라는 작지만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회재 선생이 퇴임 후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독락당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책을 벗삼아 홀로 즐기겠다는 의미라고 하더니 그것이 괜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욕심이 났다. 이곳이라면 세상과 등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러나 그날은 보수공사 중이라서 안을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렇게 한동안 머물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곳에서 11㎞ 정도 떨어진 경주 양동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양동마을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많이 있었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관람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옛 조상들의 삶을 두루 볼 수 있었다.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생활방식들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 조상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소 불편하지만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번 여행도 많은 것을 담아가는 여행이었다. 특히 옥산서원은 무게감이 느껴져서인지 돌아가는 길에도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먼 길이라 몸은 다소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도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기도하면서 대구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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