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

유명한 외나무다리…한 박자 쉬어 가고 싶은 풍경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호기심, 그리고 두려움을 잊게 하는 것이 바로 자전거 여행이 아닌가 한다.

이번 여행은 외나무다리가 아름다운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이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 지도(로드뷰)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1시간 30분을 달려도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는 도중 길을 다섯 번이나 물어야 했다. 얼마나 신비스럽고 대단한 마을이길래 이렇게 찾기 어려운지 궁금증은 더해 갔다.

그러나 가는 길은 멋지고 아름다웠다. 꽃잎이 다 떨어지고 녹음이 짙어지고 있는 길이지만 생명력이 솟구치는 봄은 어딜 가더라도 아름다웠다. 예천 쪽으로는 수박과 땅콩, 고추 농사를 많이 하고 있었다. 때마침 '예천여객'이라고 적힌 버스가 앞을 지나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내렸는데, 비록 주름살은 짙게 그어져 있었지만 얼굴엔 여유가 흘러 넘쳤다. 시간과 다투며 사는 도시의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골이 좋은가 보다.

달리는 내내 시골 정취를 온몸으로 느꼈다. 자전거 여행 때마다 느끼는 감동이지만 갈 때마다, 장소마다 느껴지는 감동은 달랐다.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지를 800m 앞두고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고 외나무다리와 무섬마을을 보는 순간, 힘듦도 더위도 한방에 다 날아갔다.

무섬마을은 '물위의 섬'이라는 뜻으로 수도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무섬마을에는 40여 채의 고택들이 있는데, 이 중 30여 채는 조선 후기 사대부가 살았던 가옥이다. 편리한 것만 추구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섬마을은 여유 있게 한 박자 쉬어 가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기와담장에 핀 꽃들도 아름다웠고 어느 고택에 하얀 고무신이 한 켤레 가지런히 놓인 모습도 아름다웠다.

또 해우당(경북 민속자료 제29호)을 비롯해 9채는 지방문화재이기도 하다. 해우당이라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다고 한다. 김화진 선생이 세운 아도서숙은 일제강점기 때도 주민들에게 한글과 농업기술을 교육했던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무섬마을은 조선시대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마을이었다.

이곳 마을 옆에는 강이 흐르고 있는데, 주민들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서 농사를 짓고 있다. 일철이라 그런지 마을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외나무다리로 향했다. 폭이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다리라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가 없어 다리 입구에 두고 건넜다, 너무 좁아 떨어질까 봐 아슬아슬하게 건너야 했다. 건널 때는 간이 콩알만 해질 정도도 무서웠다.

영주천과 예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내성천이 만나 흐르는 물속에는 흰모래가 깔려 있었다. 맑은 물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양말을 벗고 강물에 발을 담갔다. 개구쟁이처럼 두 발로 물장난을 쳤다. 모래가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좋았다. 물장난을 치니 한낮의 태양열도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외나무다리에는 밤에도 건널 수 있게 야광등이 장착돼 있었다. 밤에도 아름다울 것 같고, 아침 안개가 끼어 있을 때는 더 운치 있고 멋있을 것 같았다. 가을에는 '외나무다리 건너기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가족끼리 특히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순간 장맛비가 오면 괜찮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도 해보았다. 혹시나 예쁜 다리가 떠내려 갈까 봐….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는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리에 앉아 저쪽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삶의 힘듦이 잊혀지고 살아 있음이 즐겁고 행복했다. 이번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에서의 추억은 오래도록 가슴 한쪽에 남아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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