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본인이 출마하거나 이끈 선거를 대부분 승리했기 때문이다. 자신부터 총선 5번과 대선을 승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 속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도 121석을 지켜냈다. 제4회 지선의 '싹쓸이'와 19대 총선의 과반 확보도 보수 진영의 대표적 승전 기록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과 수감생활 이후에도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집권까지 이어진 보수의 황금기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지닌 이들이 아직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보수 인사들은 지지층 단속·결집을 위해, 진보 인사들은 외연 확장을 위해 매번 달성군 사저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선 전례 없는 초박빙 승부가 예상된다. 이에 추경호, 김부겸 양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뻗은 손 끝에는 간절함까지 묻어난다. 박 전 대통령의 예방 여부는 물론, 더 나아가 '예방 순서'에도 표심이 반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연 선거의 여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보수가 흔들릴 때는 어김없이…본류의 '동아줄' 잡았다
보수진영이 박 전 대통령을 필요로 했던 사례를 돌아보면 대부분 '곤경'이 빠지질 않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한동훈 전 대표, 김문수 전 대선후보, 장동혁 모두 저마다의 난관을 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라는 '동아줄'을 잡았다.
윤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2022년 4월 달성군 사저를 찾았다. 근소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한 만큼, 향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여전했던 보수 진영 내 앙금을 수습할 필요성을 느낀 행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검사시절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한 전 대표는 6년 만인 2024년 3월 박 전 대통령과 마주했다. 이번에는 총선 참패를 우려하는 비상대책위원장 신분이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석 달째 충돌하며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며칠 전 두 사람의 회동을 언급하며 "위기일수록 뜻을 모아 단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외에도 김 전 후보는 대선 패배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진정성 있게 국민들에게 다가가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며 기꺼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축출 과정에서 손상된 리더십 회복을 위해 단식을 감행했고, 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국회를 찾아 '출구전략'이 되기를 자처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장 대표에게 "단식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하자, 장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며 단식을 중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어나 배웅하려는 장 대표에게 "앉아계실 것도 힘드실 텐데 쉬시라"며 두 손을 잡았다. 장 대표는 울먹거리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근혜 마케팅'도 선수쳤다…김부겸식 '동진' 핵심전략
일찌감치 여권의 대구시장 단일후보로 낙점된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본격적인 대구 행보를 시작하기도 전에 박정희·박근혜 마케팅을 꺼내들었다. 자신을 향한 진보 진영 유권자들의 견고한 지지세를 확신하고 보수 측 외연확장, 즉 '동진'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다.
김 후보는 지난 달 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엑스코라고 부를 바에야 '박정희 엑스코', '박정희 컨벤션센터'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김 후보는 지난 2014년 지선 당시에도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이날 김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지역 원로시니까 찾아뵈려고 한다"며 "국민의힘 경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유영하 의원을 통해 예방을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달 말 국민의힘 최종 경선에서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유 의원이 탈락했다. '유 의원이 최종 후보가 되지 않을 경우 예방을 본격 추진하겠다'던 취지의 김 후보 발언도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김 후보는 지난달 2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 도리를 해야 한다. 국가 원로 지도자였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는 게 맞다"면서도 "다만 조심스러운 이유는 자칫 내가 한 번 예방하겠다는 메시지가 정치적 행위로 읽히면 안되기 때문"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이 부분은 조심스럽게 추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는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 대구 달성군 현풍읍에 위치한 전통시장,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소통했다.
현풍시장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장을 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됐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朴이 키운 추경호…"함부로 팔지 마라" 金에 공세
추경호 후보는 자·타의를 가릴 것 없이 후보 확정 이후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추 후보의 이력을 논할 때, 박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탓이다.
공직시절 '경제통'으로 통하던 추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국무조정실장과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지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한 추 후보는 지난 2016년 박 전 대통령이 4선을 지낸 달성군 선거구를 물려받고, 본인도 내리 3선을 지냈다.
추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투표를 위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유 의원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추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진용을 갖추는 과정에서도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엿보인다. 추 후보가 수석대변인으로 내세운 자신의 '복심' 하중환 대구시의회 운영위원장은 1998년 박 전 대통령이 달성군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할 당시, 수행실장을 맡았던 인사로 알려졌다.
인연이 각별한 만큼 추 후보 역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예방 의지를 숨기지 않는 모양새다.
추 후보는 지난달 29일 본지 유튜브 '뉴스캐비닛'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 예방 계획을 묻는 질문에 "찾아뵙고 인사 드리는 게 도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을 가리켜 "지역의 큰 어른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라며 "인사 드리러 가는 게 제 하나의 도덕적 책무이기도 하다. 대통령 하실 때 국무조정실장과 기획재정부 차관 등 (밑에서) 일을 했으니 그런 말씀도 드리겠다"고 과거 인연을 강조했다.
아울러 추 후보는 김 후보가 박 전 대통령 예방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엑스코를 '박정희 컨벤션센터'로 명명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을 겨냥해 "실망스럽다. 과연 진정성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추 후보는 "이른바 박정희·박근혜 대통령님 팔이를 하려고 한다"면서 "단순히 (기존 시설의) 이름만 바꿀 게 아니라 크고 역사에 남을 시설을 짓고, 거기에 명명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어 "이런 말씀을 들으니 (과거 이재명 대통령이)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하고선 또 다른 지역에선 '존경한다니 정말 그런 줄 알더라' 이렇게 비아냥 거린 게 연상된다. 똑같은 형태의 언행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공세를 펼쳤다.
한편 대구지역에서는 유권자들의 '박 전 대통령 등판'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달서구 죽전네거리 등 대구 도심 곳곳에는 '박근혜 대통령님 보수 재건을 위한 활동을 청원합니다'라는 글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의 선거 초중반 선전으로 보수진영이 느끼는 위기감이 진영과 지역의 큰 어른, 박 전 대통령의 '역할론'으로 발현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지역 정가에서는 정치권을 넘어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요청이 이어지는 만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등판'까지는 자제하더라도 조만간 공식 행보에는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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