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3부> 8. 고대도시 메이보드

1800년 세월 삼킨 거대한 진흙 왕국

나레인성 전망대에 올랐다. 눈 아래 펼쳐진 고대 도시의 모습이 경이롭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살았던 흙집들이 세월에 시달려 퇴색되었어도 옛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스파한으로 가기 위해 야즈드를 출발해 서쪽으로 접어들면 곧바로 실크로드길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약 50㎞만 더 가면 도착하는 메이보드는 도시의 역사가 1천800년이나 되는 신비스러운 공간이다. 지진이 많고 외침이 잦았던 이란에서 용케도 잘 견뎌낸 도시이다. 나레인성은 이란에서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가장 오래된 성이다. 이슬람 이전 사산제국 때 이미 세워졌는데 고고학자들은 대략 추정연대를 BC 3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각 시대마다 성을 보수하고 개조해서 이 요새지를 도시의 중심으로 사용했다. 규모는 약 3만9천670㎡(1만2천 평)의 넓이에 5층 높이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메이보드 시가지 전경을 보면 한마디로 거대한 진흙 조각품 박물관을 보는 것 같다. 사방이 확 트여 가슴이 시원하게 펑 뚫리는 것 같다. 흙으로 된 냉동 창고, 켜켜이 쌓아올린 흙탑은 경이롭다. 천 년 세월을 지나면서 도시는 옛 모습 그대로 박제화되어 오롯이 한눈에 보인다. 발굴을 하면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아키메네스조의 벽돌들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원형을 복구하기 위해 지금도 작업 중이나 워낙 규모가 커 중앙 부분만 제 모습이다.

마을로 들어가 토담 사이로 길을 걸어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돌아간 느낌이지만 지금도 약 7만5천 명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잘 보전된 구 시가지를 둘러보면 짚을 썰어 넣은 점토로 만든 흙담이 정겹다. 진흙으로 된 도시의 한가운데에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길이 계속된다. 메이보드는 실크로드 상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사막 한가운데이지만 이곳에는 이미 1천200여 년 전 낙타 대상들의 숙소인 캬라반 사라이(Caravan Saray)가 존재했었다. 일찍부터 생긴 이유는 실크로드를 따라 오간 사람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산 넘고 사막을 건너면 처음으로 나타나는 마을이어서 위치상 이곳을 꼭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상이 찾아들어 낙타와 짐들로 붐볐을 것이고 온갖 진귀한 것들이 여러 지역으로 운반되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 온 물건들을 즉석에서 판매되고 물물교환도 했다. 먼 여행길을 거쳐 온 상인들은 모처럼 휴식에 길게 누워 지친 몸을 쉬게 했을 것이다. 혹은 달 밝은 밤이면 호희(胡姬)들의 춤과 노래를 듣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국제정세나 정보도 교환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옛 모습 그대로 캬라반 사라이가 존재하고 있다. 이제 낙타 대상들은 없고 200년 전에 약간 손질한 그대로 역사유적지로써 관광객들의 방문을 받아들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광장이 나오고 그 가운데 정자처럼 구조물이 있다. 아래로 공간이 열려 있어 속에서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대상들이 타고 온 낙타들이 물 마시는 곳이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마실 수 있도록 8각형으로 되어 있다. 많은 방들이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데 지금은 상점이나 카펫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지하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개업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사막으로 난 실크로드를 따라 도시를 연결하는 역마제도가 발달되어 소식을 주고받는 우편 통신 수단도 잘 구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란은 땅이 넓고 인구가 고르게 분포되어 지역 간의 소식을 접하는 제도가 필요했었다. 역마제도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우편박물관도 부근에 있다. 전시물은 200년 전 사용했던 우편도구의 모습, 당시 소포나 편지를 가득 싣고 달렸을 마차도 재현되어 있다.

메이보드시의 동쪽 언저리에는 나린 성, 카라반 사라이, 우체국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옛 고대도시를 여행하는 듯하다. 신라의 혜초 스님도 천축국 인도를 여행하고 귀국길에 토화라(아프가니스탄)과 파사(페르시아 지금의 이란)를 방문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의 중에 토화라국에서 서쪽으로 한 달을 가면 파사(페르시아)에 이른다는 등 생활상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스님이 파사국에 머문 것은 맞는데 지금의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당시에도 존재했던 이곳 고대도시 메이보드에도 스님의 발자국이 찍혔을 것으로 상상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나레인성 주차장으로 돌아와 성벽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온다. 무너진 성터에서 듣는 아잔 소리는 뭔가 애잔한 느낌이 든다. 연이어 일어나는 상상은 한 명의 페르시아 왕자도 생각하게 한다. 아랍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하자 쫓기는 신세가 된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 이곳 나레인 성을 빠져나와 동쪽 끝 조그만 나라 신라로 망명해 공주를 신부로 맞이한다는 11세기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를 떠올린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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