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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이야기] 어머니의 첫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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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공부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머니 역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가난한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하루하루 끼니 잇기도 힘드셨기에 노점상을 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다 과일 장사를 하며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고 나서 어머니는 글을 배워야 했다. 물건도 떼 와야 하고 외상도 적어야 했기에. 하지만 성질 급한 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우던 어머니는 틀릴 때마다 면박을 주는 아버지에게는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배우지 않겠다고 하고는 당신의 기억력만 의지하셨다.

그러다 자식들이 하나 둘 직장을 얻거나 결혼을 해서 당신 곁을 떠나고 난 후, 매일 매일 자식들에게 전화하는 낙으로 사셨다. 어느 날, 이제 막 글을 배운 손주로부터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편지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는 스스로 읽지를 못하셨기에 그냥 가지고만 계시다가 우리가 갔을 때 슬그머니 불러 읽어달라고 하셨다. 편지의 내용은 "할머니 사랑해요. 많이 보고 싶어요" 그것이 다였다. 어머니는 한참 그 편지를 바라보시더니 이제 손주들 때문에라도 글을 배워야겠다고 그렇게 웃으셨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집으로부터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날마다 전화통화를 하는데 무슨 일인가 하며 편지를 뜯어봤더니 봉투는 아버님이 써주셨지만 내용은 어머님이 쓰신 편지였다.

받침도 군데군데 빠지고 삐뚤거리는 글로 "우리 딸 옥자야 직장생활 하고 잘살고 있지. 사랑한다. 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이렇게 처음으로 편지를 보낸다"는 짧은 글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글을 배우시면서 아버지와 싸웠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3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고생하시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지만 내 수첩 가장 깊숙한 곳에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 주셨고 아껴주셨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편지가 있다. 몇 글자 되진 않지만, 당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색 바랜 누런 편지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너무 보고 싶어요.

박옥자(대구 달성군 다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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