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이스탄불의 시위

'폭설로 멈춰버린 기차 안에 살인자와 함께 타고 있다. 그 살인자를 찾아라.'

누구나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추리소설의 소재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줄거리다. 그녀는 파리와 이스탄불을 오가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혼의 상심에 젖어 있던 크리스티가 1930년 14살 연하의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 사랑에 빠진 것도 이 기차 안에서였다. 둘은 기차를 타고 이스탄불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는 5일 동안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결국 40세의 유명 추리작가와 26세의 애송이 고고학자는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유럽의 귀족과 부유층들은 오리엔트 특급의 침대차를 타고 이스탄불을 찾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다. 이질적인 동양'이슬람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고 기독교인과 이슬람인들이 싸웠던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숀 코네리 주연의 007 시리즈 '위기일발'(1963년 작)의 주요 무대가 오리엔트 특급과 이스탄불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이스탄불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혼합된, 신비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필자가 이스탄불을 처음 찾은 것은 22년 전이다. 터키 북부에서 버스로 온종일 달려 동이 트는 새벽에 비몽사몽 상태로 이스탄불에 도착했는데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이 안개에 싸인 보스포러스 해협이었다. 낮에 와서 보니 그렇게 멋진 곳은 아니었지만 동서양을 연결하는 바다이기에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가 1453년 당시의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면서 함대를 산 하나를 넘어 옮긴 뒤 바다에 진입시켜 승기를 잡았다고 하는 골든 혼 해안의 석양은 아주 아름다웠다.

현재 이스탄불은 시위로 시끄럽다. 한 지인은 불과 보름 전 이스탄불에 갔을 때 중심지인 탁심광장에 앉아 커피를 마셨는데 이제는 시위 장소로 변해버려 아쉽다고 했다.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8월 말 이스탄불에서 세계문화엑스포를 열기로 돼 있기에 관계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금쯤이면 문화엑스포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할 때인데도 터키의 정국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터키인들은 중국 고서에 흉노, 돌궐족으로 묘사되던 용맹한 투르크인의 후예이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고난을 겪은 민족이고 보면 현재의 혼란과 불안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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