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십년 기침·검은 가래, 괜찮으려나…" 안심연료단지 주민건강 조사 첫날

17일 대구 동구 반야월농협에서 대구 안심연료단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영향조사가 실시돼 주민들이 의사와 건강 상담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7일 대구 동구 반야월농협에서 대구 안심연료단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영향조사가 실시돼 주민들이 의사와 건강 상담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7일 오후 대구 동구 신기동 반야월농협 3층 소강당. 흰머리에 깊은 주름이 있는 전병길(80) 씨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섰다. 손에는 집으로 배달된 주민건강영향조사 통보안내문을 들고 있었다.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본인임을 확인받은 뒤 조사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어 곧바로 24명의 의사가 줄지어 앉아있는 곳에서 설문조사를 받았다. 15분여 동안 설문을 마친 뒤 1층 주차장 X-Ray 촬영차량에 올라 흉부사진을 찍었다. 51년째 안심연료단지 인근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인근 연료단지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공기가 탁했고 평소 가래가 자주 끓었다"며 "10년 전에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폐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나와 6개월간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 안심연료단지 주민건강영향조사가 17일 안심1동 1, 2, 4통 주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연구책임자 임현술 교수)이 중심이 된 이번 조사는 이달 28일까지 연료단지 500m 이내 2천88명을 포함해 안심 4개 동의 45개 통 주민 5천34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주민건강영향조사는 설문조사와 흉부방사선(X-Ray) 검사로 구성돼 있고, 이를 통해 8월 2차 정밀검진 대상이 결정된다.

이날 설문은 크게 '질환증상'과 '환경노출'에 관한 조사로 나뉘었다. 현재 주민들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 특히 호흡기질환에 집중해 설문이 이뤄졌다. 의사들은 먼저 호흡기와 알레르기 질환의 증상에 대해 물었다. "아침에 찬 바깥공기를 들이마실 때 연달아 기침을 합니까, 평소 깨어 있는 동안 가래가 나옵니까?", "예"라고 하자, "숨쉬기 답답하거나 숨을 헐떡거립니까, 가슴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고 압박감이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다음으로 유해환경에 얼마나 노출됐는지에 관한 질문을 이어갔다. 안심지역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 살면서 먼지가 들어와 창문을 열지 못하거나 빨래를 널지 못한 경험이 있는지, 코를 풀거나 가래를 뱉으면 시커먼 분진이 섞여 있었는지 따위에 대해 파악했다.

이날 조사에 참여한 정재덕(68) 씨는 연료단지가 있는 율암동에서 태어나서 5년 전에 율하동으로 옮겼다. 정 씨는 "가래가 끓고 감기에 자주 걸려 병원에 다닌다"며 "저탄장 앞을 지날 땐 숨을 못 쉴 정도로 공기가 나쁘다. 할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하루 만에 새카맣게 변할 정도"라고 했다.

50여 년 동안 연료단지 인근에서 살아온 원종선(70'여'동구 서호동) 씨는 "창문을 못 열고 살았고 기침을 하면 검은 가래가 나왔다"며 "이번 조사로 그동안 주민이 겪은 불편이 증명돼 하루라도 빨리 연료단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바란다"고 했다.

이르면 이달 말 설문조사와 X-Ray 검사를 총괄해서 2차 정밀검진 대상자를 선정한다. 특히 설문조사를 통해 X-Ray 검사에서 나타나지 않는 만성폐쇄성 폐질환 등을 알 수 있고, X-Ray는 총 3개 기관이 함께 판독에 나선다.

이관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부교수는 "1천 명 이상의 조사 단위에선 500m 이내 주민과 이외의 비교군 사이에 호흡기 질환 발병률이 3~5% 정도만 차이가 나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은희진 안심지역 비산먼지대책위원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질환 실태 자체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학조사를 통해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그래야 연료단지 이전의 명분을 얻고, 차후 주민 피해보상을 위한 소송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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