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사랑한다면

얼마 전 80대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부인을 차에 태우고 물속으로 뛰어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 아래 달린 댓글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지요. '나도 차를 팔지 말아야겠다'였습니다.

이를 보며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영화 '아무르'를 떠올렸습니다. 80대 노부부의 사랑과 비극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안겨준 영화이지요.

평화롭던 80대 부부에게 어느 날 아내가 반신불수가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후 남편과 아내의 변화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평생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사람이 반신불수가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지난해 12월 개봉한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3월까지 관객 7만6천500명을 동원했습니다. 이 중 절반가량이 40, 50대 여성이었다지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통칭하는 다양성 영화로는 대단한 관객 수라고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부부의 사랑에 관해서가 아닙니다. 배우자에게 혹은 나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를 한번 고민해 보자는 것이지요.

요즈음 은퇴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치매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치매에 걸리면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보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자식들에게 혹은 배우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이지요. 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자존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아야겠지만 남의 일만도 아닙니다. 한국 노인 10명 중 9명이 한 가지 이상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노인 의료비는 전체 의료비의 34%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해 주지요. 노인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입니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고령화사회의 어두운 모습에 모두들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길 바라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아내 혹은 남편을, 자식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최악의 상황에 대해 미리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을 밝혀 두는 것이 어떨까요. 글로 적어도 좋겠지요. 영화 '아무르'를 보면서 이것이 가족에 대한 진정한 배려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무더운 여름, 너무 불편한 이야기를 했나요.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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