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말 조리

국어사전에 '조리'(條理)는 '말이나 일 따위가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라고 풀이되어 있다. 만약 말이나 일이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으면 부조리(不條理)다. 조리는 본디 음악에서 유래된 말로 보인다. 맹자의 만장(萬章)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조리는 맥락(脈絡)이란 말과 같으니, 여러 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맹자는 공자의 덕을 음악에 비유해 '공자지위집대성'(孔子之謂集大成)이라고 했다. 공자 같은 이를 일컬어 집대성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집대성이란 '풍악을 일으키는 사람이 금(金)으로 소리를 퍼뜨리고, 옥(玉)으로 거두는 것인데 금으로 소리를 퍼뜨린다는 것은 조리를 시작함이고, 옥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를 끝냄이다'(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 金聲也者 始條理也 玉振之也者 終條理也)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 고대에 음악은 '금을 쳐서 시작하고 옥을 흔들어 마친다'고 해서 금성옥진(金聲玉振)이라고 했다. 소리를 퍼뜨리고 거두는 사이에 맥락이 닿아 모든 게 갖춰지면 곧 음악인 것이다. 성(成)은 음악이 한번 끝나는 것으로 여러 소성을 합하여 대성이 되듯 공자의 학식과 덕이 완전하다는 찬사로 집대성이라고 했다.

NLL 발언이 담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법이 새삼 구설에 올랐다. 사람마다 말의 쓰임새가 다르지만 화법은 곧 화술이다. 그런데 화법에 조리가 없거나 어법(격)에 맞지 않으면 문제 삼게 마련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율사 출신답게 말 조리에 있어 논리가 있고 어조가 강하다. 격의 없는 말투와 친근한 화법도 장점이다. 반면 재임 중 더러 부적절한 표현과 거친 언사로 논란을 일으킨 사례도 없지 않다. 회의록에 나타난 화법도 조금 실망스럽다. 임기 내 도장을 꽉 찍어놓겠다는 의욕이 앞선 탓인지 서두르는 기세가 역력하다. 묵직한 보따리를 들고 갔는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여유가 없어지고 마치 조르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굴욕적'이라는 새누리당의 표현처럼 국민 입장에선 사실 거북하다.

이번 사태는 NLL 발언이나 기록물 공개의 불법성 여부를 떠나 말에 조리가 없으면 어떤 파장을 낳는지 보여준다. 공개를 둘러싸고 '반역의 대통령'이니 '금기 깬 연산군'이니 여야의 독설도 결코 조리 있게 들리지 않는다. 모두 조리가 없으니 말만 계속 낳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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