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논쟁]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 논란

"중·일 역사왜곡 제대로 알아야" vs "역사 멍들게 하는 일회성

이영호 경북대 사학과 교수
이영호 경북대 사학과 교수
이대희 대건고 한국사 교사
이대희 대건고 한국사 교사

한국사 교육 강화는 최근 교육계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가 크다고 꼽히는 방안이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다. 수능 사회탐구영역의 선택과목인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이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한국사 교육 강화라는 취지는 좋으나 수능에서 한국사 시험을 반드시 치르도록 하는 것이 이 취지를 만족시킬 유일한 대안인지는 곱씹어봐야 할 뿐 아니라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수능 체계를 흔들 수 있는 데다 다른 과목과의 형평성, 수험생의 학습 부담 증가 등이 우려된다는 것.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들어봤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중·일 역사왜곡 제대로 알아야"…이영호 경북대 사학과 교수

-수능시험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수능에서는 서울대만 한국사 과목 성적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대다수 학생들은 사실상 한국사 과목 공부를 포기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학생들의 한국사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독도 문제 등 한반도 주변의 역사 분쟁이 심화돼 가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고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점수 경쟁이 일어날 것이지만,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적으로 치르도록 하는 것은 실보다는 득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미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교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배우는데 굳이 수능에서 필수로 해야 하나.

▶고교에서 한국사가 필수로 지정돼 있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사를 공부할 것이라는 판단은 매우 어리석다. 현재 한국사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돼 있고 대부분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한국사 학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한국사 과목 내신이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수능에서 선택하지도 않을 과목이라는 이유로 한국사 학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사회과교육학회가 사교육비 부담, 다른 사회 교과 축소, 학생들의 학습 부담 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국어'영어'수학이 필수과목인데 한국사까지 필수과목으로 추가된다면 학생들의 부담이 일정 부분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입시 부담과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어'영어'수학도 선택과목으로 돌려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다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들어 한국사 교육 강화에 반대한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견해이다.

한국사회과교육학회는 사회과 중 일반사회 과목 교수, 교사들로 구성된 학회다. '사회과'라는 말이 포함돼 있어 역사'지리'일반사회 과목 선생님들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는 학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학회에서 수능에서 한국사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는 데 반대한 것은 역사과를 제외한 일반사회, 지리 교사들의 수업시수 등을 고려한 차원으로 이해한다. 이번 일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입식, 암기식 수업에 변화를 주는 게 먼저라는 의견도 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금도 많은 교사들이 역사 수업에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과 연구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 과목이 입시에서 소외돼 있다는 현실적 요인으로 인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유발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한국사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지정하는 것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책은 된다고 본다. 나아가 한국사 과목의 내용을 줄이고, 좀 더 쉽게 서술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한국사를 선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사 멍들게 하는 일회성 정책"…이대희 대건고 한국사 교사

-한국사 수능 필수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민족의 장래는 없다.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자국의 역사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목적이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그 방법상의 문제점을 덮을 수는 없다. 학생들의 역사적 지식 수준이 낮다 해서 수능시험에 한국사를 필수로 하자는 안이한 생각이야말로 역사 교육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 동북공정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면 그때마다 역사 교육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정치권의 기회주의적 공약(空約)과 현장의 실태를 외면한 채 무분별한 교육 정책들을 쏟아내는 일부 교육학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다.

역사적 지식과 역사 인식은 다른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의 신사(神社)를 '젠틀맨'(紳士)으로 아는 학생도 있지만 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독도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역사적 지식은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역사적 탐구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평생 동안 꾸준하게 길러진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미명 아래 시행된 '집중이수제' 속에서 한 학기 동안 반만년 역사를 공부하는 황당한 정책과 수능 필수화를 외치는 일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한국사 교육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수능에 포함되지 않으면 현실상 제대로 학습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는데.

▶수능에 포함되면 역사적 지식은 조금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잃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합리적인 판단력과 상상력, 문제 해결력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 인식의 확장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장 교사들의 수업 방법의 변화와 다양한 현장 체험 학습 등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역사 인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의 역사 인식을 강화할 방법은.

▶주제 학습, 토론 학습, 현장 체험 학습 등 다양한 수업 방법의 변화와 학생들의 관심 주제 등을 실제적으로 다룰 수 있는 수행평가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또 교육청과 교육부 차원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지리' '역사+정치'경제' '역사+과학' 등 다양한 현장 체험 학습과 보고서 발표회 등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역사 인식을 높이기에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 대신 한국사 기초시험 도입, 또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활용해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고 합격 시에만 대입 지원 자격을 주자는 주장도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사는 2012학년도 고교 입학생부터 계열에 관계없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따라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통해 합격과 불합격을 따져 학생이 일정 수준의 점수에 미달할 경우 다음 학기 등에 재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래도 통과하지 못할 경우 교양 교과에 한국사를 개설해 이를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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