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1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선 자금 수사와 측근 및 친인척 비리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자신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을 몇 시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그 나름 측근 및 친인척 비리 문제에 대한 사과를 통해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은 최도술·안희정 등 측근들의 대선 자금 관련 비리와 친형 건평 씨의 인사 청탁 비리를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사과했고 그 과정에서 인사 청탁의 당사자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실명을 두 번이나 공개했다.
"경기고·서울대를 나오시고 대우건설 사장까지 하신 분들이 돈 가방을 싸들고 상고를 졸업한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사람(형)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돈 주는 그런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합니다. 패가망신합니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입에서 범죄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인사 청탁 사실이 상세하게 공개되자 남 전 사장이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한강에서 투신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IMF 사태 후 그룹 해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우건설 경영 정상화에 수완을 보인 그였지만 연임에 실패한 그는 비자금 조성과 인사 청탁 여부에 대한 수사를 받다가 노 전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접하게 되자 극도의 수치심과 두려움에 휩싸여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셈이다.
탄핵소추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로 기획된 기자회견은 결과적으로 성공했겠지만 극도로 정제돼야 할 대통령의 발언이 한 사람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각 부처에 대한 분야별 업무보고를 생중계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깃털보다도 가벼운 언행은 노 전 대통령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각 부처와 산하 기관에 대한 생중계 국정 업무보고는 '환단고기'와 '책갈피 달러 밀반출' 검색을 둘러싼 인천공항공사 사장과의 입씨름만 각인되면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이학재 사장에게 "말이 기십니다. 어디서 노세요. 나보다 더 모르네"라고 지적하면서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노 전 대통령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이 사장이 다음 날 SNS로 조목조목 사실관계를 밝히면서 반박하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던 것은 다시 예기치 못한 비극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공직자의 소신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 낙인찍기로 공직자의 인격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폭력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소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공직자에 대한 일방적 호통은 '대통령은 다 알고 있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 독불장군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여러 논란과 우려에 대해 "정책 과정이 투명하게 검증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집단지성이 모여야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커진다"며 "연습하다 보면 다 좋아진다"며 생중계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깨알 지시와 준비되지 않은 질의가 즉흥적인 정책 변화나 조율되지 않은 정책 혼선으로 흐를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더더구나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상처를 주고 무시해도 괜찮은 공직자는 세상에 없다. 대통령도 그럴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이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역대 대통령 모두 비판을 받은 바 있는 국정 운영 행태다. 국정보고는 대통령이 잘 모르는 궁금한 사항을 즉석에서 묻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가 위서(僞書)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역사 논쟁을 제기한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국민과 동포의 개념도 잘 모른 채 정부가 (중국) 조선족과 재외동포 등 소재 국적별로 차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질의한 것인가도 묻고 싶다. 핵을 가진 북한이 우리의 북침이 두려워서 방벽을 세우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북침을 언급한 대통령이다. 핵원료 재처리 여부 등 원전에 대해서는 당(黨)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며 진영에 따른 편 가름을 공식화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은 아닌지,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이 국정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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