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 주의 온천 휴양지 바트 엠스에는 역사적 기념비가 서 있다. '엠스 전보(Ems Dispatch) 사건' 기념비다. 1870년 7월 13일 엠스에서 베를린으로 날아든 한 통의 전보는 19세기 중반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바꿔 놓았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촉발한 유명한 엠스 전보 조작 사건 때문이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당시 헤세-나사우 지방에 속한 엠스에 휴가차 머물고 있었다. 주프로이센 프랑스 대사 빈센트 베네데티가 본국 훈령을 받고 급히 그를 찾아가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가문이 더 이상 스페인 왕위 계승에 관심 갖지 않는다"는 점을 확약하도록 종용했다. 하지만 빌헬름 1세는 무례한 이 각서를 거부하고 일의 전말을 담은 전보를 비스마르크에게 보냈다.
사단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프랑스가 남독일연방을 부추겨 통일을 방해하고 룩셈부르크 대공국까지 넘보자 화가 난 비스마르크가 전보 원문을 교묘히 조작해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 국왕에게 무례를 범했고 국왕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는 점을 주도면밀하게 부각시켰다. 이 사실이 양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개전 여론이 들끓었고 7월 19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보불전쟁이 발발했다. 엠스 전보는 프랑스를 굴복시키려 개전 구실을 찾고 있던 비스마르크에게 물실호기였다. 당시 프로이센 군대에 포위당한 파리 시민들은 쥐를 잡아먹으며 겨우 연명했다고 한다.
최근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플래카드와 걸개그림에 대해 일본 시모무라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민도를 걸고넘어졌다. 일본의 민도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어이없게도 당시 경기장에 버젓이 나부낀 전범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스포츠의 정치적 행위를 반대한다면서도 자기 과오는 감춘 것은 비열한 짓이다.
엠스 전보 조작처럼 이런 왜곡이 양 국민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마 일본 정부는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미국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대해 정치 공작 운운하거나 아소 부총리의 '나치식 개헌' 발언 등에 비춰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일말의 의식조차 없는 일본 정부와 정치인, 언론의 후안무치나 졸렬함만 비웃을 게 아니다. 그 이면에 가려진 일본인의 간계를 더욱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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