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를 집으로] <5>'노르웨이의 흔한 풍경' 평일 오후 유모차 끄는 아빠들

법으로 보장된 '아빠 휴가'…자녀와 함께한 6개월은 '행복한 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활보하는
"미트볼, 어떻게 자를까?" 말린(왼쪽)은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트볼을 어떻게 자를지 고민하고 있는 딸을 아르네가 쳐다보고 있다.
아르네 집 바로 옆에는 아담한 놀이터가 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미끄럼틀을 타는 말린. 이날 말린은 아빠와 함께 미끄럼틀을 탔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활보하는 '젊은 아빠'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남성은 "12주간 아빠 휴가를 내고 딸을 돌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말린이 다니는 유치원. 집에서 도보로 3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아르네는 매일 퇴근길에 유치원에 들러 딸을 데려온다.
아르네 집 바로 옆에는 아담한 놀이터가 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미끄럼틀을 타는 말린. 이날 말린은 아빠와 함께 미끄럼틀을 탔다.
말린이 다니는 유치원. 집에서 도보로 3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아르네는 매일 퇴근길에 유치원에 들러 딸을 데려온다.

2010년 기준 노르웨이의 합계출산율은 1.95명. 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2.20명)와 프랑스(1.99명)에 이어 세 번째다. 노르웨이가 이처럼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빠들의 높은 육아 참여 덕분이다.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을 의무화한 정책, 이를 적극 활용하는 남성들과 사회적 분위기, 세 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다. 육아에 참여하고 싶어도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시간이 없는 한국 아빠들과 사정이 다르다. 도대체 노르웨이 아빠들의 삶은 어떻고, 노르웨이는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일까.

◆"법으로 보장된 권리, 눈치 볼 필요 없어"

지난 6월 오후 노르웨이 오슬로의 오스트에로스 지역. 오슬로 중앙역에서 지하철 5번 라인을 타고 30분을 가면 도착하는 종점이다. 약속 시간인 오후 5시 30분이 되자 폭스바겐 차량 한 대가 역 앞에 섰다. 노르웨이 아빠 아르네(31)다. 운전석 뒤 카시트에 앉은 딸 말린(3)이 "수~ 수~"라며 기자의 이름을 부르며 환영했다.

제지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아르네는 퇴근길 매일 어린이집에 들러 딸을 데려온다. 오전 8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인 노르웨이에서 가능한 일이다.

차로 15분을 달려 주택이 20여 채가 모여 있는 주택가에 도착했다. 아르네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한 것은 불과 한 달 전. 그는 "원래 지하철 역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지만 말린이 점점 크면서 뛰어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아빠의 바람대로 말린은 쉴 새 없이 동네를 뛰어다녔다. 집 앞 테라스에 앉아 고개만 돌리면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말린이 "아빠!"를 부르자 아르네는 곧장 뛰어가 함께 미끄럼틀을 탔다.

그는 2010년 6개월간 '아빠 휴가'(paternity leave)를 사용했다. 노르웨이에는 '아빠 쿼터제'(papa quota)가 있다. 부부는 합쳐서 총 59주 휴가를 쓸 수 있는데 이 중 12주는 반드시 아빠가 써야 한다. 만약 사용하지 않으면 12주는 사라지고, 수당도 받을 수 없다.

올해 7월부터는 이 기간이 14주로 늘었다. 노르웨이 아빠 대부분이 이 휴가를 쓰기 때문에 직장에서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오슬로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부인 캐롤라인(28'스웨덴)이 먼저 6개월 휴가를 썼고, 나머지는 아르네가 사용했다.

캐롤라인은 "휴직 기간 동안 국가에서 임금의 70%를 지원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딸과 함께한 6개월을 '아주 행복한 시간'(beautiful moment)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공원에 가고,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었다.

삶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6개월간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은 모두 그가 도맡아 했고, 캐롤라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식사 준비도 아르네가 했다. 말린은 새벽 2시에 깨서 울었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다.

그는 "직장에서는 오후 4시에 모든 일이 끝나고 그때부터 일에서 자유롭지만 집이라는 직장은 그렇지 않더라. 내 상사가 새벽 2시에 '배고프다' '토했다'고 내게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며 껄껄 웃었다.

◆둘째 낳으면 또 6개월 휴직

아르네는 못하는 요리가 없다. 미트볼과 햄버거, 팬케이크, 초밥까지 척척 만들어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요리를 익혔다.

노르웨이에서는 중학교 때 '요리수업'이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돼 있다. 미트볼 만들기와 반죽하기 등 내용으로 일주일에 3시간 정도 수업이 있고 성적에 반영된다.

그는 "내가 여섯 살 때부터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고, 항상 음식을 식탁에 날랐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노르웨이 남자들은 학교와 집에서 이런 문화를 자연스레 배운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책 덕분에 평일 오후 오슬로 시내에서 혼자 유모차를 끄는 아빠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한 노르웨이 남성은 "12주 휴가를 내고 딸을 돌보는 중"이라며 "남자 혼자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이 나라의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설명했다.

임신 5개월인 캐롤라인은 내년 초 둘째를 낳는다. 이때 아르네 부부는 6개월씩 휴가를 쓸 예정이다. 그는 국가가 나서서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을 장려하는 만큼 아빠들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르네는 최근 그가 본 통계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 통계는 30년 전 주부였던 엄마들과 현재 일하는 엄마들의 육아 시간을 분석한 것인데, 과거나 지금이나 엄마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요즘 엄마들이 아무리 바빠도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노력의 결과다. 이 시대 아빠들이 엄마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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