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중산층

중산층이란 말은 1745년 제임스 브래드쇼가 만든 팸플릿에 처음 등장한다. 소작농과 귀족 사이의 계층을 나타내기 위해 중산층이란 말이 나왔다. 주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 그룹을 나타내기 위해 이 말이 필요했다.

중산층이란 말은 누가, 어떤 이유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들쭉날쭉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를 지배 계급 아래, 프롤레타리아 계급 위에 존재하는 그룹으로 봤다. 도시 상인이나 전문가 집단은 중산층으로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훗날 마르크스 학자들은 마르크스가 본 중산층을 프티 부르주아 계급으로 구체화했다.

미국에서는 한때 대학 학위를 기준으로 노동자 그룹과 중산층을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급여를 받는 기간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2주 이하 단위로 급여를 받으면 노동자, 월 단위로 받으면 중산층, 투자 등 수익으로 급여를 받을 필요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룹은 귀족층에 속했다.

우리나라에선 이 모든 아이디어들을 합친 개념이 사용됐다. 1990년대, 당시 경제기획원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2.5배가 넘고 자가 또는 독채 전세의 주택을 가졌으며 안정된 직업이 있고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지는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 시절 중산층 대표 가구는 '고졸로 제조업에 근무하는 30대 외벌이'였지만 2010년엔 '대졸로 서비스업에 근무하는 40대 맞벌이'로 변했다.

정부가 소득세 증가 기준으로 총급여 3천450만 원을 들고 나왔다 화들짝 놀라 5천500만 원으로 높이는 소동을 빚었다. 세수 증대에 눈이 멀어 중산층 기준을 은근슬쩍 낮췄다가 곤욕을 치른 것이다. 세법 개정안이 나오기 전 중산층 세 부담 증가가 없다고 선전했으니 3천450만 원을 중산층 기준으로 삼았던 셈이다.

현재 기획재정부의 중산층 기준은 5천500만 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중산층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다. 4·11 부동산 대책 발표 때는 연소득 6천만 원이었고 올해 다시 등장한 신재형저축 가입 기준에서는 5천만 원이었다.

정부가 정하는 중산층 기준을 탓할 일은 아니다. 국민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느끼느냐의 문제다. 정부의 증세 기준선에 많은 이들이 반발한 것을 보면 중산층이라 여기는 국민이 그만큼 적었던가 보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나라가 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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