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서남부의 도시 카를스루에(Karlsruhe)에 있는 곽금식(66) 관장의 체육관을 찾은 날 오후는 한국의 한여름을 무색게 할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다.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태양은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한가운데에서 도시의 포도를 달구고 있었다. 도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끼쳐왔다. 하얀 도복을 입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관원들이 사범의 구령에 맞춰 앞지르기, 발차기 동작을 하고 있었다. 도장 벽에는 태극기와 독일 국기가 나란히, 그 가운데에는 '태권도'라고 한글로 쓴 대형 액자가 정면에 걸려 있었다. 그 외에도 '홍익인간' '예의' '염치' '극기' 등의 구호가 적힌 한자 액자들도 도장 벽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곽 관장의 체육관에 태권도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녀 사우나 시설도 갖춰져 있고, 따로 피트니스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태권도와 함께 에어로빅, '태보'(태권도와 복싱을 합쳐 만든 다이어트 운동) 등 건강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그래서 체육관 이름도 '곽금식 스포츠와 여가센터(Sport und Freizeitzentrum)'이다.
◆광부로 시작한 독일 생활
곽 관장의 체육관은 이곳 카를스루에 외에 30㎞ 정도 떨어진 포르츠하임(Pforzheim)에도 있다. 각각 400여 명의 관원이 있으며 연간 매출은 75만유로(한화 약 11억원)에 달한다. 이런 종합체육관을 키워내기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청년 시절,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한국군과 미군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자연스레 해외에 나가 태권도 보급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졌다. 1970년 말 제대를 했지만 그 꿈을 바로 실현할 수는 없었다. 당장은 생계가 급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파독 광산근로자 모집 광고였다. 곽 관장이 독일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이듬해인 1971년 봄. 지하 1천m까지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다시 30㎞ 이상을 전동차로 이동한 작업장에서 땀을 흘렸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태권도 수련은 거르지 않았다. 기숙사 근처 숲 속을 찾아 혼자서 태권도를 연마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태권도 연습을 하고, 독일어를 익히다 보니 어느새 3년이란 계약 기간이 끝나게 되었다. 광산 생활을 끝낸 후 한 선배가 운영하던 태권도장의 포르츠하임 지관(支館)에서 사범 일을 하며 태권도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2년 후 그 지관을 인수해 자신의 도장을 열었고, 같은 해 다시 카를스루에에도 도장을 개관했다. 10년 후인 1985년 카를스루에 도장은 종합체육관으로 변신, 오늘에 이른다.
◆그의 성공 비결, 성실과 신뢰
"저를 한 번 안 사람은 거의 친구가 됩니다. 제가 친화력은 좀 좋은 편인 것 같아요. 힘든 일이라도 먼저 나서서 하고 찾아서 하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도 훈련, 운동, 오락 등 못하는 게 없어 '팔방미인'으로 불렸습니다. 어떤 일을 맡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친화력은 성실한 성품에서 나온다. 3년 동안의 독일 광산생활 때도 단 하루의 결근도 없이 근무, 회사로부터 재계약 제의를 몇 차례나 받았다. 자신의 도장을 두 군데나 운영하면서도 그는 모든 관원들을 성심성의껏 대했다. 유치원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성인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은 태도로 함께 수련하고 상담해 주려고 늘 노력했다. 현장에서도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팔굽혀펴기 등 준비운동부터 시범까지 직접 해낸다.
이렇게 가까워진 관원들은 곽 관장의 체육관 경영에 '재산'이 되었다. 은행원, 회사원, 세무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관원들은 세무, 회계, 대출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었다. 카를스루에 체육관을 이전, 종합체육관으로 개관하려 할 때는 수억원에 달하는 은행 대출을 관원인 한 부인의 도움으로 단번에 해결하기도 했다.
◆60대 청춘, 영원한 현역
곽 관장의 일상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오전 10시 피트니스센터를 열고 전화, 서류처리 등 여러 가지 업무로 하루를 시작하면 오후 1시까지 일한다. 점심식사 후 잠시 휴식한 뒤 오후 3시 30분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수련생들을 가르친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KO가 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은퇴를 생각하지 않는다.
"늘 운동을 하다 보니 아직 체력적으로 부치는 건 없습니다. 게다가 체육관을 처음 열 때부터 40년 가까이 한결같이 나오는 회원들이 있고, 아들과 손자까지 데리고 오는 옛 회원들이 있는데 당장 남에게 넘기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 체육관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다들 좋아합니다. 이사 등으로 타 지역으로 가서 운동하러 오지 못하는데도 20년 이상 회비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권도를 보급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도 곽 관장의 활동에 큰 힘을 주고 있다.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한 분들이 스스로 체육관을 열고 또 태권도를 보급하는 데 앞장서는 걸 볼 때 정말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6월 한국에 이분들을 모시고 가 국기원에서 공로상을 받게 했는데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이제는 스승과 제자가 아닌 같은 태권도인으로서 긍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카를스루에에서 오후 수련을 마친 곽 관장이 서둘러 또 차에 올랐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포르츠하임에서도 지도를 한다. 장남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지만 그곳에도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글'사진 홍헌득기자 duckdam@msnet.co.kr
※곽금식 관장은
1947년 달성군 논공면 남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며 태권도에 입문, 백마부대 태권도 교관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베트남에서도 한국과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30개월간의 복무가 끝난 후 1971년 파독 광산 근로자로 독일에 건너가 현재까지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다. 태권도 공인 9단으로 국기원 해외자문위원, 독일 카를스루에 태권도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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