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2할 자치를 이대로 둘 것인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담은 백서가 최근에 하나 발간되었다.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펴낸 지방분권 백서는 서두에서부터 "2할 자치" 등의 표현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상을 자괴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고 있는 모든 단위 사무 중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사무에 비해 비교적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자치사무는 20%밖에 안 되고, 국세 수입과 지방세 수입을 더한 조세수입 총액에서 차지하는 지방세 수입의 비율도 좀체 20%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따온 말이다.

일본에서도 1980년대까지 오랫동안 지방자치 관계자들 사이에 "3할 자치"라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는 지방세 수입이 지방자치단체의 세입 예산에서 3분의 1 정도를 점하고 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지방분권의 추진에 힘입어 지방세 수입의 비율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적으로 커져 지금은 우리의 2배 이상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재정적인 지방분권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행정적으로도 자치사무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일상 사무는 자치사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나 시'도가 위임한 사무에도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사무의 처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를 정하기 위해서도 자치사무와 위임사무는 마땅히 준별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어디까지가 자치사무이고 어디부터가 위임사무인지는 법령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종국에는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들을 구분 지을 수밖에 없는데, 위에서 말한 20%라는 것도 지방자치제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안전행정부의 셈법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진주의료원의 폐원을 둘러싸고 경상남도지사와 지방의료원을 지도·감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전을 벌였던 것도 바로 이런 법령상의 불명확성 때문이다.

재정은 사무의 구분처럼 불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상당 부분은 복잡한 수입과 지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가는 전체 조세수입의 80% 정도를 국세 수입으로 가져가는데 올해 예산안에 따르면 그중의 약 51%인 111조원을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국고보조금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이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출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는 이처럼 잔뜩 거두어들인 국세 수입의 절반 이상을 각지의 지방자치단체에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방세 수입이 적은 지방자치단체도 복지와 교육 등의 내셔널 미니멈을 주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마련해 주는 재원이다. 문제는 행정 각부가 정해서 조성하는 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할 때 교부되는 국고보조금인데, 우리는 지방자치단체가 A부에서 교부된 수십억원의 국고보조금으로 수행한 사업을 얼마 지나지 않아 B부의 유사한 국고보조사업으로 뜯어내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명박정부는 법률의 규정에 따른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권고 등에 따라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앞에서 말한 위임사무를 자치사무 등으로 재분류해 자치사무의 비율을 높이면서 사무의 구분도 명확히 법정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들어서고 국회도 제19대로 바뀌었지만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이런 내용의 지방분권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재정에서는 퇴행적인 이야기조차 들린다. 노무현정부가 정비한 국고보조사업이 이명박정부 때 크게 늘어나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예산에서 차지하는 국고보조금의 비중이 덩달아 높아졌다. 지방자치의 원리에 반하고 재정 낭비로 이어지기 쉬운 국고보조금을 줄이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방세 수입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지방세의 근간인 취득세의 세율을 낮추자는 목소리만 드세지고 있다.

행정 각부가 쥐고 있는 지방적인 사무'사업을 찾아내 지방자치단체로 넘기고, 그에 상응한 재원을 국세에서 지방세로의 세원 이양을 통해 마련하게 해 지방의 원기를 북돋우자.

강재호<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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