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을의 길목에서

'가을비는 떡비요, 겨울비는 술비다'라는 속담이 있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 최고로 풍요로운 계절이었다. 이런 풍요로움으로 '가을에는 비가 오면 떡을 해먹으며 놀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술을 담가 먹으며 쉰다'는 뜻이다.

이제 휴가철도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이다. 아직은 대부분의 활동을 하는 낮 기온이 높아 완연한 가을의 느낌을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고, 저녁에도 불과 1주일 전과 비교하면 훨씬 선선해진 것 같다.

해도 짧아져 오후 7시만 되면 어두워진다. 언제까지 더위와 싸워야 되겠냐며 선풍기 바람만 찾아다니다보니, 어느덧 가을의 길목인 처서(處暑)가 지났다. 처서는 1년 24절기 중 14번째 절기로 여름의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선선함이 온다는 뜻에서 처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전히 밤낮 없는 업무로 인해 더위를 대책없이 견뎌야 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절기상 처서가 지났으니 마음만큼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고 느끼고 일상에서 가을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계절은 사계절 중 가을로 나타난다. 사계절 중 유독 가을을 독서의 계절, 수확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등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여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서도 '가을 들판이 어설픈 친정보다 낫다' '가을 들판에는 송장도 덤빈다' 등 풍요로운 가을을 표현하는 속담은 무궁무진하다.

'가을 다람쥐 같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욕심부리는 사람들, 주워 담을 것이 너무 많아 우왕좌왕하며 쉴 새 없이 양식을 주워 나르는 다람쥐에 빗댄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가을에는 수확할 것이 많고, 할 일이 많은 것을 뜻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 농사는 미련한 사람이 잘 한다'고도 한다.

가을 날씨에 관한 속담도 많은데 '가을 날씨 좋은 것과 노인 기분 좋은 것은 믿을 것이 못 된다' '가을 날씨와 계집 마음은 믿어서는 안 된다'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를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가을비는 장인의 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는 말 또한 가을비가 금방 지나감을 표현한 것이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음식에 빗댄 속담 중에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 장은 가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는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은 차갑게 먹어야 맛이 좋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도 삶의 여유와 윤택을 가장 느낄 수 있는 계절이라 할 수 있다.

박대성<파워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 power1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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