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남편의 수난시대

한때 유행하던 유머 중에 '매 맞는 남편' 시리즈가 있었다. 그중에서 "어디 가느냐?" "밥 차려 달라!"고 했다가 맞았다는 이야기는 시대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단지 '눈이 마주쳤다'고, '아침에 눈을 떴다'는 이유로 맞았다는 이야기에는 씁쓸한 기분을 금할 수가 없다. 웃자고 한 이야기에 뭐 그리 과민반응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웃어넘기기엔 무엇이 좀 켕긴다. 바로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비록 지금은 나이가 들어 천덕꾸러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도 한때는 아내에게 아침에 눈 뜨면 생각나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리라. 사랑을 속삭일 때 그의 가슴은 한없이 넓었고, 가장으로서 그의 어깨는 그 무엇보다 든든했으리라. 젊었을 때 소처럼 일해 처자식을 먹여 살렸지만, 그것은 다 옛날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 처지가 늙고 힘이 없어졌으니, 국물 우려낸 멸치와도 같은 신세가 되어 괄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원통하고 억울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별로 늙지 않은 남편들도 벌써 집에서 강아지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넋두리다. 어쩌다 그리되었을까? 그럴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적용해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자. 아내가 외출했다 아무리 늦게 돌아온다 한들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한다. 가자미눈을 뜨고 째려보는 남편과는 다르다.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남편에 비해, 강아지는 늘 변함없이 꼬리를 흔들어대며 재롱을 떨어댄다.

'귀염받기' 경쟁에서 남편은 강아지에게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없는 꼬리 흔들어 댈 생각은 말고, 미움받을 짓이나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내 눈앞에 알짱거려봤자 덕 볼 일 별로 없다.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나가는 게 상수다. 집에 꼭 있으려면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최대한 존재감을 감추며 지낼 일이다. 그저 미운털이나 박히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 해도 성공적이다. 사람은 한번 미워지기 시작하면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가 들어서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집에 있지 말고 무슨 일이든 만들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 텃밭을 가꿔 반찬거리라도 해결한다든지 뜻있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소일거리는 노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날마다 저녁이면 보람을 안고 퇴근을 한다면 본인도 뿌듯하겠지만, 아내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뭘 물고 오는 개를 함부로 가마솥에 넣고 삶기야 하겠는가?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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