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 유족의 끈질긴 의혹 제기 및 수사 요구와 검찰의 철저한 수사 등으로 15년 만에 붙잡혔다.
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부장검사 이형택)는 1998년 구마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 양을 교통사고 전에 외진 곳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특수강도강간 등)로 스리랑카인 A(46) 씨를 구속 기소하고, 스리랑카에 있는 공범 B(44) 씨와 C(39) 씨 등 2명을 기소중지했다.
A씨는 2011년 10월 청소년에게 성매수를 권유한 혐의로 벌금(100만원)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채취된 DNA가 1998년 당시 교통사고로 숨진 채 발견된 정 양에게서 검출된 남성 정액 DNA와 일치해 덜미가 잡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 1998년 10월 17일 새벽 술에 취해 있던 정 양을 구마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근처로 데려가 현금과 학생증 등을 뺏은 뒤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양은 성폭행당한 직후인 이날 새벽 5시 30분쯤 대구 달서구 소재 구마고속도로에서 23t 트럭에 치여 숨졌다.
검찰은 이들이 정 양을 성폭행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경북대 및 단국대 법의학교실 등에 부검 재감정한 결과 교통사고로 밝혀져 살인이나 치사 혐의를 추가하진 못했다. 검찰은 정 양이 성폭행 당한 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피신 또는 도움을 청하러 가다 방향 감각을 잃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마고속도로로 들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구지검 이형택 형사1부장은 "정은희 양이 성폭행당한 뒤 왜, 어떻게 고속도로까지 가게 됐는지는 규명이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부검 감정 결과나 트럭 운전자 진술 등을 토대로 볼 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사고가 나 숨진 것은 확실해 치사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이 사건 규명을 포기했다면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다. 유족은 1998년 이후 수차례 교통사고 운전자, 수사 경찰관 등을 상대로 고소, 항고, 민원, 헌법소원 등을 제기했고, 올 5월 31일 대구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마침내 15년간 맺혀 있던 한이 풀렸다.
특히 지난해 9월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DNA를 상호 점검한 결과 1998년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 DNA와 2011년 사건으로 채취된 A씨의 DNA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정 양에 대한 교통사고 기록 등이 공소시효 만료로 폐기됐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를 재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당시에도 정 양의 시신에 속옷이 없는 점 등 성범죄와 관계됐을 정황이 있는데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유족 등의 공분을 샀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02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뒤 2005년부터 스리랑카 식품점을 운영해 왔고, 공범 B씨와 C씨는 불법체류자로 2003년과 2005년에 각각 강제 추방된 상태다.
대구지검 이금로 1차장 검사는 "수사 검사가 직접 공판에 참여해 피고인에게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해외 체류 중인 공범들에 대해서도 형사사법 공조 등을 통해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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