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원의행복' 대구 내당교회 22년째 알뜰나눔장터

가격 낮추고 사랑 더하고 '이웃과 소통'

25년 동안 대구 내당교회 목회를 이끌고 있는 조석원 담임목사가 예배당에서 교회 당직자들과 함께 사랑과 나눔의 표시를 하고 있다.
25년 동안 대구 내당교회 목회를 이끌고 있는 조석원 담임목사가 예배당에서 교회 당직자들과 함께 사랑과 나눔의 표시를 하고 있다.
내당교회의 지난해 제21회 나눔의 잔치 때 모습. 교회만의 종이 화폐가 통용되는 초알뜰 장터로 지역민에게 인기폭발이다. 올해는 12일이 장날이다.
내당교회의 지난해 제21회 나눔의 잔치 때 모습. 교회만의 종이 화폐가 통용되는 초알뜰 장터로 지역민에게 인기폭발이다. 올해는 12일이 장날이다.

"1997년 외환위기(IMF)와 1998년을 빼고는 1990년부터 올해까지 나눔의 잔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50년 애락원 가족들이 김종은 목사 사택에서 매주 모여 예배드린 것이 모태가 되어 창립된 대구 내당교회(담임목사 조석원)가 다음 주 12일 제22회 '추석맞이 지역주민 초청 나눔잔치'를 연다. 장소는 내당교회 앞 주차장이며, 이 주차장이 이날 하루 동안은 거대한 나눔 장터로 변신한다.

대구 달서구 두류동 일대 주민들과 서구 내당동 일대 주민들은 벌써 내당교회 나눔의 잔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나눔 장터에서는 새 상품은 시중 가격의 3분의 1, 중고제품은 원 가격의 5∼10%만 주면 내 물건이 된다. 이렇게 저렴하다 못해 손해 보는 거래가 가능한 건 물건값의 차익분은 내당교회가 매년 2천만원 이상을 내서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눔의 잔치 때에도 지역주민 1천500여 명이 참여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해는 2천 명 가까운 지역 주민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돈 100원이 소중한 나눔의 장터

12일 내당교회에는 한국은행 지폐 대신 100원짜리 내당교회 발행 종이 화폐가 사용된다. 100원 가치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몇백원으로 맘에 드는 상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발행 1천원권 지폐 4장 가지고 오면, 신상품 기준으로는 시중가격 1만2천원 상당의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중고제품을 잘만 사면, 10만원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는 매년 추석을 앞두고 내당교회에서 열리는 '나눔의 잔치'는 알뜰구매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김현준 부목사는 "매년 많은 지역민이 나눔의 잔치에 와서 큰 기쁨을 맛보고 간다"며 "올해는 참기름, 계란, 미역, 수건, 간장, 설탕, 치약 등 더 다양한 상품들이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이 나눔의 행사는 올해가 22번째다. 1989년에 부임한 조석원 현 목사가 예수님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듬해인 1990년부터 시작됐다. 조 목사는 매년 조금씩 행사 예산을 늘리고, 찬조금도 받아 나눔의 잔치 규모를 키웠다. 자연스레 더 많은 지역민이 이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22년째인 현재는 2천 명가량의 지역민이 알뜰장터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올 연말 내당교회 장로로 피택된 권순홍 장립집사는 "지역교회가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하는데 딱 맞는 좋은 행사가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채로운 인생행로, 조석원 담임목사

64년 역사의 내당교회와 제6대 담임목사인 조석원(64) 목사는 나이가 같다. 조 목사의 64년 생애 가운데 목회 활동기간이 34년이다. 그 가운데 25년을 내당교회 담임목사로 임하고 있다.

4일 내당교회 담임목사실에 찾았더니, 도서관의 서고처럼 많은 책이 진열돼 있었다. '원래 목사가 꿈이었나요?'라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안동교대를 나와 10년 동안 경북 영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냈다. 이후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과 응답을 받고 10년 동안 신학공부를 한 후 목사가 되어 30년 동안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 목사는 남은 만 6년의 세월도 내당교회를 반석 위에 우뚝 서도록 하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의 가족사도 놀라웠다. 경북 영양이라는 시골에서 4형제 중 장남은 장로가 되고, 3형제가 목사가 된 것. 둘째 형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됐으며, 큰 형과 셋째, 넷째 동생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4형제 중 막내인 조석원 목사는 교사를 그만두고 목사가 되는 과정에서 부인과 큰 갈등을 겪었다. 하나님의 강한 응답을 받고는 목사의 길을 가는 데 반대하는 부인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결국 부인도 남편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길을 함께 하고 있다.

조 목사는 "참 놀랍죠. 하나님은 저에게 산촌, 농어촌, 소도시, 중소도시, 대도시 등을 오가며 많은 목회활동 경험을 하게 했으며, 서울'부산 등에서도 부목사'목사를 하면서 큰 역할을 주셨다"며 "장로신학대 시험을 칠 때도, 하나님이 제게 기적(다른 과목은 망쳤지만, 성경과목은 만점에 가까움)을 체험하게 했다"고 하나님 종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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