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흔적

사전적인 의미의 흔적(痕跡)이란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를 말한다. 내가 남긴 흔적은 어떤 의미일까? 좋은 흔적도 있지만 안타까운 흔적이 더 많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름다운 흔적만 남기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연이 없는 날 혼자 극장을 찾았다.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고요 속에 묘한 흔적이 무대 곳곳마다 느껴진다. 착각 같은 것이겠지만, 공연의 흔적들이 공허함과 함께 다가온다. 기억의 흔적이랄까.

무대에 선 배우들의 몸짓, 땀, 숨소리 등의 흔적이 느껴지고, 객석에서 울고 웃으며 박수치며 환호하는 관객들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공연 속 어떤 장면이 자신의 지나온 과정과 생활 등 많은 생각들과 맞아 공감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곧바로 공연에 빠져들어 곧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울고 웃는다.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장면을 기억하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 우연히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잠든다면 이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값진 것이란 걸. 이게 곧 기억의 흔적이 아닐까.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땐 아무것도 몰랐다.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었다. 차츰 느끼고 경험을 통해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렵고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나와 보니 좀 더 채울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때 흔적이 느껴질 때마다 말이다.

경험과 기다림 그리고 열정이 필요했을 시기인 걸 이제야 안 거지만….

다들 상황은 달라도 각자 같은 느낌의 경험을 하고 있고, 그 어린 시절의 열정이 나이 들수록 폭이 넓어지고 경험도 쌓여가기에 그때 문제점, 미숙했던 점, 방만했던 것과 방관했던 것,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들을 점점 알아가고 느끼기 때문에 세월의 흔적이 남는 것일 아닐까.

기억의 흔적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비밀 같은 것이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것들. 시대가 변해가면서 점점 자기만의 기억의 흔적이 책, 영화,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자기 안에 비밀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때론 좋아하고 때론 반성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서 우리만의 흔적을 작은 부분이나마 남겨 그들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두드리고 싶다. 내가 제작하고 연출한 이 무대에서.

이홍기<극단 돼지 대표·ho88077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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