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6일의 삶' 살다 간 슬픈 아기

성매매 직업여성이 출산 아동보호센터서 돌연사…외조부는 시신 인수 거부

'배 속에서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나를 버렸다. 세상을 떠났지만 외할아버지는 내 시신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성매매 직업여성이 낳은 생후 2개월 된 갓난아기가 가족이 있지만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오전 6시쯤 대구 수성구 만촌동 한 아동보호센터. 이곳에서 자라던 한 여자아기가 목숨을 잃었다. 태어난 지 56일째 되던 날이었다. 이른 아침 다른 아기들이 깨서 울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보육교사가 살펴보니 숨을 쉬지 않았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 의사들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성매매 직업여성인 아기 엄마 A(35) 씨는 지난 7월 19일 만삭의 몸으로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미혼모 보호시설을 찾았다. 아이를 출산하기 3일 전이었다. 몸이 허약했던 A씨는 7월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

A씨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터라 태아를 지우려고 했다. 이미 임신을 17번 했고 그 중 15번이나 낙태를 한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몸이 허약해져 낙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낳게 된 것이다.

7월 26일 A씨는 미혼모 보호시설 담당자와 함께 출생신고를 한 뒤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기는 병원에서 태어난 지 5일 만에 고아가 됐다. 7월 29일 연락이 닿은 외할아버지도 아기를 손녀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말썽을 부리며 밖으로 나돌던 딸을 이미 버린 자식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도망간 엄마가 물려준 건 B형간염과 매독 등 병이었다. 그 때문에 2주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아기는 8월 5일 퇴원, 아동보호센터에 입소했다. 아기는 또래보다 체격이 왜소했지만 다른 아기들과 다름 없이 분유를 잘 먹었다. 선천적으로 병을 안고 태어났지만 잘 커가고 있었다.

그러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아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분유를 잘 먹지 못했다. 오후 11시쯤 보육교사(30'여)가 달래며 젖병을 입에 물렸고 30여 분이 흐른 뒤 아기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깨지 않아 보육교사가 살펴보니 숨을 쉬지 않았던 것.

부검을 할 때도 엄마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외할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해 아기의 시신을 거둘 것을 제안했지만 인도받기를 거부했다. 결국 아동보호센터 사람들이 아기를 화장해 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수사를 맡았던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아기의 얼굴은 주먹만 했고 몸도 야위어 한 팔에 안을 정도로 작았다"며 "배 속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태어나서도 버려진 아기인데 죽어서도 슬퍼해 주는 사람이 없어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한 달가량 수사를 벌인 결과 최근 '영아돌연사'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경찰에 따르면 부검에서 뚜렷한 외상 흔적이 없었고, 대변과 혈액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분석했지만 별다른 약물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다.

영아돌연사란 생후 1년 미만의 아기가 잠자던 중 갑자기 사망하는 것을 말하며 보통 생후 2, 3개월 된 아기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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